[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103]파란 (장만호 시인)

2023-02-16     경남일보
파란 (장만호 시인)
 


칠월의 서가에는

죽간(竹簡)이

만 권, 읽는 이 없어도

하늘에 풀어놓는 저 무수한 파란



-장만호 시인의 ‘파란



‘파란’이란 낱말은 격랑이 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인은 저 푸른 대숲이 주는 초록의 격랑을 먼저 맞이하게 된다. 그다음 시인은 사물에서 변화를 보거나 기복이 일거나 혹은 두드러지게 뛰어난 어떤 영역과 정서적으로 조응하게 된다. 찰칵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감흥과 함께 즉순간적으로 사물이 내포하고 있는 메타포를 받아 적는다. 시인은 순식간에 고대 중국과 접속한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 대나무 조각을 엮어서 만든 책 죽간이 오버랩된 것이다. 시인에 의해 칠월의 대숲은 만 권이 넘는 죽간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 된다. 누가 읽지 않아도 고대의 역사는 파란만이 아니라 만장일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