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105] ‘환장할 봄’ (이기영 시인)

2023-03-02     경남일보
‘환장할 봄’ (이기영 시인)
 



쪼글쪼글 말라비틀어진 본처 뒤에서
첩살이는 이제 막 핀 한 떨기 꽃이네

-이기영 시인의 ‘환장할 봄’



이기영의 ‘환장할 봄’은 사진시가 아니라 디카시임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미지와 문장의 미적거리는 생경하게 동떨어져 있다. 문장만으로는 메타포가 형성되지 않는다. 시적 의미가 읽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진과 문장이 융합하여 강렬한 메타포를 형성한다. 시인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산수유꽃과 열매에서 본처와 첩을 읽어낼 방도가 없다. 쪼글쪼글하고 말라비틀어진 본처와 이제 막 핀 한 떨기 꽃 같은 첩을 어떻게 비유 유추할 수 있겠는가. 사진 속 산수유꽃을 보며 봄이라는 것 정도는 알겠으나 왜 ‘환장할’ 봄인지는 알 수 없다. 디카시 뿐만 아니라 어느 예술이나 익숙한 의미 구조는 독자들에게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단순하거나 반복된다면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반해 이기영의 디카시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대상을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재생함으로써 독자에게 보다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게 한다. (시인 · 디카시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