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106] 썸 (하연우 시인)

2023-03-09     경남일보
(하연우 시인)
 


끝과 끝에 앉았다

눈빛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부터

거리는 줄자처럼 말려들고

둘은 끝없이 날아올랐다

-하연우 시인의 ‘썸’



국민 누구나 껌깨나 씹던 시대가 있었다. 나 역시 껌 좀 씹던 언니 세대이다. 7, 80년대 주전부리가 많지 않던 시절 껌은 휴대하기도 간편했지만, 껌 한 통에 여러 개가 들어있어 참으로 경제적이었을 뿐 아니라 가격도 부담이 없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가벼이 권할 수 있는 최고의 먹거리로 지금 말로 한다면 국민껌이었던 셈이다. 사실 껌의 맛은 기억에 없다. 내가 자꾸 껌을 샀던 것은 껌종이에 그려진 그림이나 시 문구 때문이었다. 그 껌종이를 모으는 것이 취미였을 정도였는데, 성인이 되어 꿈을 꿀 때면 그때의 껌이 오브제로 나오고는 했다. 꿈의 상황은 동아리 수련 장소인데, 그중 가장 멋진 남자 선배가 반으로 자른 껌을 내 손에만 살짝이 쥐여주고는 했다. 하연우의 말대로라면 그때 꿈속의 상황은 ‘썸’이었다.

1930년대 김유정의 ‘동백꽃’은 소년과 점순 사이의 닭싸움이 있었고 1950년대 황순원의 ‘소나기’는 소년과 윤 초시네 증손녀 사이에 수수깡짚단이, 1980년대 청소년들에게는 껌이 썸을 타게 만들었다. 2000년대 청소년들은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썸이 시작된다. 사랑에도 시대가 보인다. 시인·디카시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