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이름 값

변옥윤 논설위원

2023-03-13     경남일보
옛날에는 귀한 자식일수록 어릴 때에는 바우, 똥개, 붙돌이 등으로 천하게 부르다 어느 정도 성장하면 육십갑자에 사주팔자까지 동원해 기대와 바램을 담아 정성들여 이름을 지었다. 이름이 곧 인격이고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었다.

▶대량소비로 광고가 상품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디어시대에 접어들면서 네이밍은 매우 중요해졌다. 주류업체들이 ‘처음처럼’, ‘좋은데이’, ‘참이슬’ 등으로 상품명으로 경쟁하고, 제약회사들도 상품성격과 효능을 앞세워 영어와 한글을 섞은 네이밍으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상품명이 곧 상품의 정체성과 효능을 가늠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네이밍은 위기를 극복해 반전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 신화는 라면이나 건강식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각 정당들은 위기 때마다 정당 이름을 바꿔 이미지 쇄신을 도모해 왔다. 아마 우리나라의 정당만큼 자주 이름을 바꾼 정치집단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정체성과는 거리가 먼 사례도 적지 않다.

▶더불어 민주당에 ‘더불어’가 실종되고 ‘민주’는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국민의힘에는 ‘국민의 힘’이 실리지 못하고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다는 시중의 비아냥은 이름에 걸맞는 치열한 정체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 값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의 이름은 곧 존재 이유다. 지금의 우리 정당은 팥소가 없는 찐빵과 다름 아니다.
 
변옥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