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정치 현수막 유감

한중기 논설위원

2023-03-15     경남일보
작년 말부터 시작된 정치권의 현수막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11일 시행된 이후 정당의 현수막 고삐가 불리면서 전국의 길거리는 ‘문자테러 장’으로 변했다. 육두문자에 버금가는 비난성 내용이 담긴 질 낮은 정치 현수막이 마구잡이로 내걸리면서 시민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정치권 자기들 끼리 법을 고쳐 정당마다 신고나 허가절차 없이 정치적 현안이나 정책이 담긴 현수막을 최대 15일 동안 마음껏 내걸 수 있게 했다. 수량도 무제한이다. 특혜도 이런 특혜가 없다. 오직 정당에게만 부여된 특권이다. 먹고살기 위해 홍보용 현수막을 내걸어야 하는 자영업자나 서민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완용’, ‘2××야!’ 라는 문구까지 등장하는 19금 내용에다가 도시미관을 해치는 흉물로도 모자라 마침내 안전사고까지 터졌다. 얼마 전 인천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던 한 여대생이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넘어지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길거리에 마구잡이로 설치하다 보니 생긴 예고된 사고나 다름없다.

▶정치 현수막의 심각한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자 눈치 빠른 정치인들은 현수막 개수를 제한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고 나섰다. ‘병 주고 약 주겠다’는 격이다. 입장이 난처한 지자체들도 대책마련에 나서는 등 부산을 떨고 있어 다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디지털 시대에 국민의 시각과 정서를 해치는 정치 현수막이 과연 필요한지 따져 봐야 할 일이다.
 
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