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입에 발린 말 말고

2023-03-23     백지영

“이건 예의와 염치의 문제입니다.”
지난 16일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심문섭:시간의 항해’ 전시와 ‘N ARTIST 2023’ 전시 개막식은 일반적인 행정 주도 행사에서 보기 드문 신랄한 발언의 연속이었다.


시작은 이달 초 임기 만료로 미술관을 떠난 김종원 전 도립미술관장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백남준과 함께 한국 대표 작가로 초청받았던 심문섭 조각가를 향해 “이곳에서 전시를 해주셔서 영광”이라고 운을 뗀 김 전 관장은 이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해 심문섭 선생님께서 100호(가로 폭 162㎝의 대형 캔버스) 크기의 작품을 경남도에 기증했는데, 아직도 간단한 전화 인사조차 받지 못하셨습니다. 최소한의 염치가 있다면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아트페어에서 억대를 주고도 작품이 다 팔려 구하지 못한다는, 국내 현존 작가 중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가의 회화 작품을 받고도 입을 싹 씻었다는 힐난이었다. 현장을 찾았던 경남도 관계자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굳어갔다.


어렵게 모셔 온 거장에게 생전 처음 겪는 수모를 안긴 경남도를 향한 비판은 거침없었다.
“행정이 그러면 안 됩니다. (문화 예술 육성에) 입에 발린 말만 하지 말고 실제 행동을 표해야지요.”
그는 도립미술관의 노후화·고착화 등을 지적하며 “생동감 있는 미술관이 되길 바란다. 부디 이 미술관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직격했다.


심문섭 작가 역시 쓴소리에 나섰다. 그는 도립미술관이 소장품 매입비 등 예산과 직원 부족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짚으며 “경남도에는 미술관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문화 정책을 수립할 때 생각으로, 입으로만 문화 문화 하지 말고, 실천을 해주세요. (개막식에) 도 관계자도 와있는 만큼 메모해서 지사님께 좀 전해주길 바랍니다.”


지난해 도지사 선거에 앞서 박완수 당시 후보가 내세운 수많은 공약 중 예술 육성 공약은 사실상 전무했다. 취임 후 정책 과제 71개를 발표하며 ‘문화예술 창작 활동 지원 및 콘텐츠산업 활성화’를 추가하긴 했지만, 그간의 행보를 지켜본 도내 예술인들 사이에는 민선 8기는 문화 예술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80대 거장이 ‘야단맞을 각오’를 했다며 경남도를 향해 꺼내든 이야기, 이번에는 ‘패싱’하지 말고 부디 곱씹어보길 바란다.


백지영 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