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공정과 힘

정재모 논설위원

2023-03-30     경남일보
한자 권세 權(권)자에는 저울추라는 새김도 있다. 소전(小篆)에서 이 글자는 나무(木)에 황새(관)가 앉아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큰 새가 나무에 깃들려면 나뭇가지 굵기와 제 몸무게가 맞춤하도록 발붙일 적당한 곳을 탐색하게 될 거다. 딴 짐승의 침노와 나뭇가지의 지탱력을 함께 감안하는 이 계량에서 ‘권’ 자는 저울이란 뜻을 얻었으리라.

▶‘권’은 권세, 권력, 권한, 권리, 권위 같은 낱말로 분화된다. 권자 돌림의 이 어휘들은 다소간 개념 차이가 있지만 모두 어떤 ‘힘’을 내포하고 있다. 가문의 권세, 정치 권력, 관청의 권한, 주인의 권리, 스승의 권위 같은 게 다 모종의 파워 아닌가. 먼 옛날엔 저울추를 지칭했던 글자 뜻이 이처럼 확장된 건 공정(公正)이 곧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헌법재판소가 ‘검수완박법’에 대해 “통과 절차는 틀렸지만 법은 유효하다”고 심판했다. 판결 후 한 주일이 지나는 이 시점까지 세간에는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헌재가 손을 들어준 야당 쪽에선 ‘무리한 쟁의심판 청구를 낸 법무장관은 사과든 사퇴든 책임지라’고 집요하게 요구한다. 여당 쪽에선 ‘헌법재판소 아닌 정치재판소’냐고 거칠게 비난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에 거의 토를 달지 않았다. 불만스러워도 그 권위에는 도전하지 않는 걸 도리로 여겼던 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불만과 비난을 자제하지 않는다. 최종심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수용하긴 싫은 모양이다. 판결이 공정치 못해 힘을 잃은 걸까. 힘을 올바르게 쓰지 않아 권위가 추락한 걸까.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