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양간지풍

한중기 논설위원

2023-04-12     경남일보
엊그제 발생한 강릉 산불이 순식간에 대형 화재로 번진 데는 독특한 지형과 기상 탓이 크다. 최대풍속 30㎧의 강력한 국지성 바람이 나무를 쓰러뜨려 전선을 단락시켜 불씨를 제공했고, 헬기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 사이 불길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불쏘시개가 되어 강릉 일대를 초토화 시켰다.

▶양간지풍(襄杆之風) 때문이다. 봄철 백두대간 동쪽 양양과 고성(간성), 강릉 쪽으로 부는 바람이라 해서 양강지풍(襄江之風)으로도 불리는 강한 바람이다. 남쪽 고기압과 북쪽 저기압의 기압차로 인해 발생한 바람이 영서지역의 찬 공기가 서풍을 타고 백두대간을 넘는 순간 역전층을 만나 순간적으로 압력이 높아지면서 태풍급 강풍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양간지풍의 피해는 예나 지금이나 악명 높다. 2005년 천년고찰 양양 낙산사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2000년에는 백두대간 산림 2만 3138㏊를 잿더미로 만들기도 했다. 성종 20년인 1489년 3월 25일에는 양양에서 큰 산불이 나 민가 205채와 낙산사 관음전이 불탔다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전하고 있다.

▶올 봄 유난히 산불이 잦다. 지난달에는 국립공원 지리산에 산불이 났고, 서울 한복판에서도 산불이 나는 등 전국 곳곳에서 연이어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건조한 바람이 불씨를 만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남긴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조화를 인간이 막기란 지난한 일이다. 사소한 부주의로 인한 산불이 더 이상 나지 않도록 자나깨나 불조심할 일이다.
 
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