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준비된 만남만 있을 뿐이다

김태욱 김취열기념의료재단 이사장

2023-04-12     최창민


업(業)을 위한 인간관계는 시도 때도 없이 확장되고 축소된다. 조직이나 모임의 구성원이 되면 그 즉시 인간관계가 확장되고 그 조직과 모임을 탈퇴하면 축소된다.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할 경우에는 나의 적극적인 의지와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완벽한 인간관계도 없고 완벽한 만남이란 없다.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하지만 무엇인가 빠진 것을 발견한다.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 고객을 만나더라도 무엇인가 아쉬운 것이 있다. 조직원들과의 미팅에 예상 가능한 질문과 답안지까지 만들어보지만 역시나 생각지 못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이미 만들어진 돌다리조차도 두들겨가며 개울을 건너야 한다”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없는 돌다리는 놓아가며 건너야 한다”고 말한다. 닭과 달걀의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결국은 선택의 문제이다.

병원을 운영하는 필자로서도 역시나 완벽한 인간관계나 만남을 예상하지 아니한다.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도 이력서와 인터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일을 시켜보았을 때에만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의 단면이나마 찾아볼 수 있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넘어야만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럴 때 결국 의존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일 따름이다. 이러저러한 배경의 사람은 통상 이렇다라는 과거의 경험은 새로운 것을 맞이할 때에 일정 부분 도움을 준다. 그러나 시대가 변할수록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과거의 경험으로 오늘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어느 정도까지 경험의 중요성을 인정할지, 어느 정도까지 변화된 세태를 반영할지, 어느 정도까지 내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을 받아들일지에 달려있을 뿐이다. 어제의 성공 방정식이 오늘도 여전히 통할 것이라 믿는 것도, 어제의 실패로 오늘의 일마저 실패할 것이라 우려하는 것도 결국 선택의 문제이다. 필자가 30년간의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느낀 바는, A라는 방향을 위해 치열하게 달렸을 때에 A로부터 소기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혀 다른 B라는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효과를 보기도 했다. 성동격서(聲東擊西·한비자가 언급한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습격한다)를 의미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A를 향한 줄기찬 노력을 제3자인 B가 지켜보면서 의도치 않게 B로부터 결과물을 얻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짐한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 결과가 내가 의도했던 곳에서 나오면 최상이고, 그렇지 않아도 반드시 나의 치열함을 간파한, 그래서 이를 인정하는 제3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무엇을 목적으로 하든 인간관계는 만들어지고 파괴된다. 갑작스레 만난 새로운 인연이 나에게 행운을 줄 수도 있고 불행을 주기도 한다. 완벽한 인간관계란 없다. 그러나 준비된 만남은 가능하다. 내가 보는 만큼, 내가 아는 만큼 관계가 형성되며, 내 스스로 갈고 닦은 만큼의 인간관계가 다가온다. 내가 준비되지 아니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관계가 형성될 뿐이며, 내가 준비한 만큼의 인간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작년의 나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면, 내가 준비한 만남조차도 나아질 것이 없다. 누군가를 설득하려하기 보다는 그 장단(長短)을 설명하는 것으로도 충분함을 깨닫지 못하면 내가 바라는 인간관계는 형성될 수 없다. 언젠가는 나에게 다가올 그 알 수 없는 인간관계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오직 준비된 만남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