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네가 누군지 안다’

정재모 논설위원

2023-04-13     경남일보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한 젊은이는 작년 11월 ‘예비 검사’로 선발되었다. 그가 지난 1월 술에 취한 상태에서 행인과 시비 중 출동한 여경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폭행을 가했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큰소릴 쳤다. 재판에서 벌금 300만원, 선고유예 판결이 나자 법무부는 이달 말로 예정된 검사 임용을 취소했다.

▶이틀 전 대부분의 언론들이 다룬 이 기사를 보면서 설원(說苑)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부귀는 약속하지도 않은 교만이 스스로 찾아온다.’ 원래 전국책 어디엔가 있는 말이라는데, 전한의 유향(劉向)이 교만을 경계하는 말로 명언집에 담아둔 거다. 이를 보면 2천 년 전이나 오늘이나 인간은 자칫 교만해지게 돼 있는 존재인가 싶다.

▶한자 교만할 ‘驕(교)’자는 馬+高가 본딧자다. 말이 높은 섶다리를 건너가는 걸 가리키는 형상이라는 것. 그 무거운 체중이 긴 네 다리를 떼놓으며 높고 좁고 튼튼치 못한 섶다리를 지나는 게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겸손하지 않고 잘난 체하며 방자함을 이르는 낱말 교만은 위험하다는 경고에 다름 아닌 거다.

▶검사 임용 낙마자 말고도 작금 말 한마디로 위험해진 사람들을 더러 본다. 대통령의 말 ‘5·18을 헌법전문 반영’에 딴소리를 낸 여당 최고위원, 강성 지지자의 과격함을 비판하는 이더러 ‘멍청한 정치인’이라 한 야당 최고위원이 그들이다. 교만이 묻어 있는 말은 남이 먼저 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교만 떠는 순간 우리는 대뜸 그가 누군지 안다. 위험에 처한 사람!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