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94) 담쟁이(이해완)

2023-04-23     경남일보
담쟁이(이해완)
 

 



내 삶이 아닌 것들은 왜 저리 찬란하냐

한 점 바람에도 나는 늘 위태로운데

백목련 이 봄에 벌써

절정에서 타는구나



오늘도 나는 나를 딛고 스스로 올라서서

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 빗장 걸린 이 세상을

실핏줄 터진 손으로

부단히 열고 있다



피 터져 얼룩진 삶 밑그림으로 깔아두고

초록, 생명의 빛깔 찍어 암각화를 새긴다

내 잠시 머무는 지상,

한 벌 뿐인 목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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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아닌 것들은 왜 저리도 찬란할까요. 남들은 웃고 있는데 나는 왜 슬픈 걸까요.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은 심하게 우울하거나 자괴감에 빠집니다. 내 안에서 찾으려는 행복이 내 안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아갈 때 좌절과 허무에 진저리나기도 하죠. 한 점 바람에도 나는 이리 위태로운데, 이 봄날 백목련은 절정에서 타는군요. 하지만 목련이라고 절정에 이르기까지 순탄한 길만 있었던 건 아니었을 겁니다. 가장 아름답게 타오르기 위해 나무는 맨몸으로 비바람을 견디고 혹한의 계절을 보냈을 겁니다. 생은 결국 홀로 가는 일입니다. 나를 딛고 올라서서 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 세상을 스스로 열어야 하는 거죠. 실핏줄 터진 손으로 부단히 말이지요. 우리의 삶이 담쟁이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한 벌뿐인 목숨을 안으면서 삶에 대해 치열하게 성찰해야 하는 건 우리 몫이겠지요. 초록으로 생명의 빛깔을 찍어 암각화를 새겨도 이곳은 그저 잠시 머물다 갈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많은 것에 연연하지 않기로 해요. 겸손하게 오늘을 살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