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쇠똥구리

한중기 논설위원

2023-04-26     경남일보
고대 이집트인들은 쇠똥을 동그랗게 말아 굴리는 곤충을 ‘태양의 신’으로 추앙했다. 쇠똥 구르는 재주가 신통방통해 ‘쇠똥구리’로 불리는 녀석이다. 새로운 생명의 환생을 기대하며 시신에 쇠똥구리 모양의 부적을 만들어 함께 묻었다. 매일 저녁 사라졌다가 다음 날 아침 되살아나는 태양처럼 사자가 영생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달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 발굴된 그 ‘쇠똥구리 부적’ 전시회가 열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인간과 얽힌 쇠똥구리 역사가 오천년이 넘는 셈이다. 쇠똥구리는 ‘똥 경단’ 굴리는 솜씨만 있는 게 아니다. 밤하늘 은하수 별빛을 쳐다보며 길을 찾는 천문학자라는 사실도 놀랄 일이다.(마틴 스티븐스 ‘감각의 세계’)

▶국립생물자원관이 최근 발간한 국가생물자료집을 통해 쇠똥구리를 ‘지역절멸’상태로 결론지었다. 지역 내에서 잠재적 번식능력을 지닌 마지막 개체가 죽었거나 야생에서 사라졌다는 의미다. 1970년대 이후 공식적인 관찰 기록이 없다. 가축 사료의 항생제 탓이 크다. 소의 배설물에 남아 있는 항생제를 먹고 절멸한 것이다.

▶환경부가 6년 전 오천만원을 걸고 살아 있는 쇠똥구리를 찾기 위해 현상수배까지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초지 사막화가 심각했던 호주는 아프리카 쇠똥구리를 들여와 가축의 배설물을 처리하면서 초원의 옛 모습을 되살렸다고 한다. 우리도 몇 해 전 몽골에서 개체를 들여와 번식 중이라니 씩씩한 재주꾼 쇠똥구리의 환생을 기대해 본다.
 
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