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밤길(이덕규)

2023-04-30     경남일보
조금만 참아라
다 와간다 좋아진다
이제 따뜻한 국물 같은 거
먹을 수 있다

멀리서 가까이로
개 짖는 소리 들리고
언뜻 사람들 두런거리는 소리도
지척에까지 가까워졌다가는
이내 다시
아득히 멀어졌다

어머니
누비 포대기 속에서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마흔아홉번째 겨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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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을 오를 때 넉넉히 내려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정상이 얼마쯤 남았냐고 물으면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희망을 준다.
또 물어보면 금방이라고 용기를 준다.
조금이 또 조금이 되고, 화딱지에 포기할까 망설이다가 이제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에 결국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환한 정상에서의 성취감, 이것이 등산의 백미다.
산꾼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이 고비만 넘기면 이 일만 해결되면, 이 시기만 잘 피하면, 그렇게 위안하다가 시간이 가고 이만큼 나이를 먹게 된다.
견디는 과정에서 고통은 결과에 따라서 쉬이 잊어버릴 수도 있고 영원히 앙금으로 남을 수 있다.

울다 깨다 하면서 세상의 포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게 세상살이이다.
처음부터 다시 하라면 누구도 다시 각오가 서지 않는 게 이 일이다.
몸부림의 연장으로 이만큼 살았었고 다만, 신은 그렇게 잔인하지 않다는 믿음 하나로 버틴 사람살이였다.

경남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