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구두 밑창이 신호탄이다

김태욱 김취열기념의료재단 이사장

2023-05-08     경남일보
 


새로 구두를 사면 더 오래 신기 위해서 구두 밑창을 대기 마련이다. 거친 땅을 밟고 다니려면 내 구두의 바닥은 닳고 헤어질 터이니 구두 밑창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구두 가격의 10분의 1도 안되는 그 밑창이 구두의 효용성을 더 오래 보장한다. 그러다가 그 밑창이 구두 코부터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다. 가만히 두면 소가 혀를 낼름거리는 것처럼 볼품없게 된다. 언젠가는 그 밑창을 다시 바꾸든지 순간접착제로 깔끔히 붙여두어야 한다.

나의 삶에도 나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우 적은 투자로 값어치를 더하는 것들이 있다. 문명의 이기(利器)란, 그것이 없더라도 삶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결국 ‘더 편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삶의 영위를 위한 기본이고, 어디서부터가 이기인지는 본인 판단에 달려있다. 모든 조직에서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저변화되어 있는 스프레드시트나 프리젠테이션 도구들은, 그것 자체로 밥벌이는 하는 사람에게는 구두이고, 그것으로써 자신의 업무에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사람에게는 구두 밑창이리라. 그렇다고 밑창을 깔보지 말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연탄재 함부로 걷어찰 일이 아니다. 밑창은 구두의 온전함과 효용성을 더 오래 연장케하는 중요한 ‘보완재’이다. 한번 밑창을 대기 시작하면 결코 양보할 수 없다. 밑창이 닳아 없어질 때면 구두에 본격적인 손상이 가해질 타이밍이란 점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밑창은 이제 구두의, 구두에 의한, 구두를 위한 보완재를 넘어서 정말로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알리미’ 역할까지 도맡았다. 어떤 사람은 왼쪽 밑창이 먼저 헤어지기 시작한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거나 골반이 틀어졌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뒷축부터 닳기 시작한다. 발을 끌면서 다니는 습관일테다. 밑창이 없더라도 그러한 정보는 파악이 된다고? 좋다! 구두를 한 켤레 더 살 수 있다면 밑창 따위야 어쨌든지 상관없을 터이다. 구두를 또 다시 살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말이다. 이쯤되면 밑창은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주는 ‘방파제’로써의 역할까지 이중 삼중으로 담당한다.

나의 삶에도 구두와 밑창의 관계는 존재한다. 기억에 의존하기 보다는 기록에 의존하는 삶이 보편화된 나머지, 약속이행을 뒷받침하는 각종의 메모장과 수첩, 달력 표기에 이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파고든 스마트폰의 일정관리 및 자동알림이 구두와 밑창의 관계이다. 명함을 받아들고 직접 입력하는 것도 귀찮은 나머지, 사진만 찰칵 찍어도 명함이 내 폰으로 자동 저장되고 상대방의 명함이 바뀌면 (분명 승진했거나 이직했을 터이다) 나에게 자동으로 알려주는 서비스까지 나타났으니, 구두가 업그레이드 된 건지 밑창이 구두를 뛰어넘은 건지는 독자가 판단하시라.

조직에도 구두와 밑창의 관계는 반드시 존재한다. 병원을 운영하는 필자에게도 모든 부서에 구두와 밑창의 관계가 있으며, 각종 기기와 설비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도 구두와 밑창의 관계를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그 밑창이 무엇을 알려주는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역시나 밑창이 없더라도 상관없다고? 또 다시 몇 백만원, 몇 천만원, 몇 억까지 들여가며 또다시 구두를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있다면 밑창을 무시하라. 그러나 필자는 들여다 볼 것이다. 밑창의 역할을 하는 각종 신호들을 귀 기울여 들어볼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구두와 밑창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거창하게 나아갈 것없이, 국가의 존속을 위해서 필요한 인구를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는 밑창이 알려줄 것이며,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교육 역시 밑창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최근 어느 지자체에서는 소형학교의 시범운영을 통해서 학생의 만족도가 최대로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인구감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진행하는 학교 통폐합보다는, 소형학교의 효율적인 운영을 통하여 교육이라는 구두에 밑창을 덧댄 것이다. 구두 밑창이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