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96)커브(Curve) -김병호

2023-05-21     경남일보
커브(Curve) -김병호
 

 



소식이라도 한번 주지 그랬나요

하늘에도 커브(curve)가 있어 별자리나 구름이 급히 기우는 자리가 있습니다

당신이 봄을 앓고 망명을 오래 생각하는 동안 오후는 다만, 다정한 거짓말에 몰두하는 자세입니다

섭섭하지 않은 궁리와 아무렇지도 않은 수작으로 마음속에 마음을 잠급니다

이제, 당신 없이도 고독을 매수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짧은 치마의 백핸드 발리처럼 훌쩍, 넘어오는 명랑한 이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덜거덕거리는 울음을 들여다보면 그제야 꽃이 지는 기적이 있습니다

구름과 허공 사이에 놓인 당신을 넘어 질주하는 허기는 까맣고 딱딱하게 오후를 태웁니다

당신은 우주에 떠 있는 커브 안으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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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은 이렇게 시작돼요. 중얼거림과 대답할 수 없는 질문으로부터요. 그러면서 익숙해지고 싶은 시간이 있는 거예요. 사는 일이 순탄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어떤 생이어도 굴곡은 있기 마련이고 이를 비켜 갈 재간은 없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주고받는 마음에서 느껴지는 거리. 세상은 영영 사랑도 영영 이별도 존재하지 않아요. 무게를 잴 수도, 그렇다고 거리를 측정할 수는 더더욱 없고요. 그러므로 세상 무너지게 애가 닳을 일이 무엇 있겠어요. 그리하여도 나는 ‘당신이 봄을 앓고 망명을 생각하는 동안 섭섭하지 않은 궁리’를 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수작으로 마음속에 마음을 잠그는’ 방법을 터득하고 ‘별자리나 구름이 급히 기우는 자리’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미련이 많은 게 또 사람이라 어찌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이제 고독을 매수하는 방법을 알았으니 다행일까요. 그럼에도 ‘구름과 허공 사이에 놓인 당신을 넘어 질주하는’ 명랑한 이별이 안쓰러운 건 왜일까요. 생각에는 커브가 많아요.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쉼을 얻고 휴식을 얻기도 하는 것이고요. 우주에 떠 있는 커브가 종일 당신을 머금고 있네요.

통영문학상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