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관계의 오만주의보

여순화 P&I 교육코칭연구소 대표

2023-07-06     경남일보


“힘으로 열 수 없는 문이 하나 있다. 사람의 마음 문이다. 힘으로 그를 꺾을 수는 있어도 힘으로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관계 회복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종종 필자가 인용하는 박노해 시인의 글이다. 짧지만 깊은 영감과 울림을 준다.

최근 수많은 관계와 속도에 집중하느라 방향을 잃고 상실을 호소하는 내담자가 급증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삶마저 기만하고 기만당한 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지속되는 관계에서 임계치에 닿고서야 비로소 제 발로 찾아와 관계의 오만과 비탄함으로 오열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우리는 피로도 높은 관계의 오만주의보에 빠지게 된 것일까.

사실 필자는 어쩌다 부모 프로그램으로 개발자로서 주로 훼손된 부모-자녀 관계 회복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슬픔의 군중, 혹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 비탄한 삶의 궤적으로 인해 자신만의 고유성과 평화를 잃어버린 무력한 개인이 다시 일상에서 살아가는 힘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필자 역시 관계의 오만에 빠져 오롯이 내면의 소리를 외면한 채, 이 일 저 일 뛰어다니며 속도가 실력인 듯 착각한 무수한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인맥 어장이라는 비합리적 신념’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마음을 뺏고 뺏기는 소위 심리적 참전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아마도 당시 나는, 과한 관계의 오만이 불러온 심리적 사막화였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필자는 여기 이 지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다소 힘을 실어 말하고 싶다. 관계의 과부하로 걸린 오만 그리고 그동안 ‘개인의 욕망을 정의로 포장한 미명들과 작별할 시간이라고. 이제라도 본심과 진정에 무게를 실어 더 나은 삶의 방향성 즉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자고.

사실 필자는 몇 해 전부터 새벽 다섯 시가 되면, 삶의 고요함을 불러내는 내면 데이트한다. 내면의 울림과 오늘의 삶의 방향성에 집중하는 훈련, 의식적 내면 듣기다. 그 후 차츰 관계의 주변인과 메인이 구분됐고 신기루와 같은 관계의 오만으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 찬란한 단단 단순 담대함을 경험하고 있다. 경이로운 모닝 미라클인가. 눈뜨면 이리도 좋은 세상, 눈 감으면 이리도 편한 세상. 단언컨대 우연이 아닌 의도적으로 확보한 시간의 힘이다. 또한 개인의 한계를 초월한 힘임을 확신한다. 아마도 실존적 삶에 가까워질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