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101)고양이를 기다리며 -이혜미

2023-08-06     경남일보
고양이를 기다리며 -이혜미
 

 



나는 당신이 좋군요.

이윽고 어제가 오네요.



가만히 놓여 있는 아침에는

눈꺼풀이 영영 닫힌 창문 같아요.



사람은 이상하네요.

특별하고 싶은데

서투른 이름들뿐이네요.



당신은 실패한 일요일 같군요.

내가 이렇게도 쉽게

비문을 속삭이는데요.



새롭고도 이상한

고백이 필요했어요.



할퀴는 동시에 안겨오는

다감한 말들이.



----------------------------------------------------------------

비바람이 심하거나 맹추위가 있는 날엔 처마에서 숨을 고르는 길냥이를 보게 돼요.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그친 어느 해 여름이었어요. 창을 열어 햇빛을 들여야겠단 생각으로 1층 계단을 내려갔죠. 그때 2층으로 고양이가 올라오고 있었어요. 계단 중간 지점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길을 비켜주어야 했어요. 저는 왼쪽으로 고양이는 오른쪽으로 비켜서서 서로의 길을 갔죠. 층계를 다 내려올 즈음 뒤돌아보며 야옹~ 인사를 보냈어요. 고양이도 뒤돌아보며 야옹, 하더군요. 한 계단 내려서서 같은 행동을 하니 고양이도 똑같이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고 그 속에는 잘 잤어? 조심히 다녀. 하는 말들이 들어있는 걸 느꼈죠. 연서 같은 이런 시를 만나면 괜히 느긋해집니다. 서로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거든요. ‘고양이를 기다리는’에서 서로의 언어 층위는 다른 곳에 있었나 보군요. 더구나 비문이어서 더 당겨쓸 감정선이 없었을 테고요. 오늘은 한 계단 올라서거나 내려서서 서로의 언어를 만져보는 건 어떨까요. 다감한 말이 고백으로 안겨 올 겁니다.

통영문학상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