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스카우트들의 삭발

2023-08-17     경남일보
불교 인과경에 ‘부처님은 출가하여 궁을 나오자마자 머리와 수염부터 깎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제 머리를 깎았으니 일체 번뇌와 업장(業障)을 끊어주소서’라고 서원했다. 그러자 여러 제석천인들이 공중에 꽃잎을 흩날리며 찬탄했다고 한다. 경전은 부처님의 출가 삭발을 성스러운 일로 적어놨다. 그로부터 삭발은 계율이 되었다.

▶불교에선 마음속의 번뇌가 머리카락으로 자란다고 여긴다. 깎고 나면 또 자라는 게 끊임없이 솟아나는 번뇌와 닮았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불교에선 번뇌의 풀, 곧 무명초(無明草)라 한다. 고대 인도에서 신체 중 가장 소중히 여겼던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건 무소유 정신을 나타내는 상징으로도 봤다. 소유욕을 싹둑싹둑 잘라낸다는 것이다.

▶이렇듯 여러 가지 뜻이 담겼기에 삭발은 불교의 주요 의식 전통이 되었다. 삭발은 출가이며 과거와의 단절이다. 첫 삭발은 대중이 보는 데서 은사 스님이 직접 해준다. 밀기 전에 스승은 반드시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며 의지를 묻는다. 무거운 그 말에도 흔들리지 않으면 비로소 번뇌의 풀은 잘리기 시작한다. 성불 게송이 주변에 울려퍼진다.

▶새만금 잼버리대회에 왔던 독일 대원들이 법주사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그 중 8명이 자청하여 삭발을 했다. 총중엔 아예 출가 스님이 되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를 기원하는 스님의 법문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초발심(初發心)의 깊이야 알 수는 없지만 벽안의 청소년들이 ‘K 수행자’의 삶을 본받겠다고 나서다니! 딱히 종교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가상하여 미소를 짓게 한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