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요양원에서 만난 천사

김상진 참진주요양원 부원장

2023-08-23     경남일보


노인복지시설에서 일하면서 천사 같은 어르신을 많이 만났다. 삶이 주는 숙제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사랑을 실천한 분들이다. 현재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어르신들이 살아온 역사만 할까?

몇 년 전 근무했던 요양원에서의 일이다. 한 할머니의 생활실 침상 뒷벽에 대형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코로나가 심할 때여서 면회를 못 한 자녀들이 할머니의 생신에 보내온 것이었다.

‘우리 할머니 정○○, 23세에 40세 강○○와 결혼’으로 시작하는 글은 제목부터 사연이 많음을 짐작게 했다. ‘91세 생신을 맞아 아들, 딸, 손자, 증손자 드림’으로 끝나는 글을 다 읽은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펼침막에는 아래의 글이 적혀 있었다.

화개골 부잣집 큰딸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독한 계모 밑에서 궂은일을 다 하다가 23살에 나이 많은 40살 홀아비에게 시집을 갔다. 막내가 7살인 네 아들이 딸린 홀아비인 남편. 남편의 손찌검도 받아 내며 식구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추운 겨울, 길거리에 나 앉게 된 가족들을 위해 발에 피가 터지도록 살았다. 75세에도 증손자를 업어 키우며 14명의 식구들 뒷바라지를 했다. 펼침막은 ‘이제 맑은 정신이 아주 작아지지만, 우리를 사랑해 주심에 감사합니다’로 맺었다. 할머니의 삶은 전래동화 속 콩쥐 같았다.(이 할머니는 얼마 후 증손녀가 집으로 모시고 갔다.)

자신의 별명이 ‘동네 젖’이었다는 임 할머니는 잊을 수가 없다. 지리산 아래서 태어난 할머니는 빨치산의 총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몸이 성한 남자는 모두 전쟁에 나갔으므로 친정아버지는 임 할머니를 장애인과 결혼시켰다. 다리가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고된 농사일을 하며 3남 1녀를 길렀다. 쌀가마니를 들어 올리는 힘든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젖은 잘 돌았다. 이웃집 젖먹이가 마른 젖꼭지를 물집이 잡힐 정도로 빨아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젖을 선뜻 물려 주었다.

“퉁퉁 부은 젖을 쑥 꺼내서 물리면 울던 아이가 잠드는 게 어찌나 좋던지…” 소문이 나면서 아이를 업은 봇짐장수들도 젖을 동냥 하러 왔다. “내 자식 남의 자식 어디 있소. 다른 좋은 일은 못 해도 젖은 많이 줬어”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지만 내가 만난 요양원의 어르신들은 어떤 처지에서든 베푸는 삶을 사셨다. 주어지는 역경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이 어르신들과의 만남에서 자꾸 부끄러운 자신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