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127] 동병상련 (신은숙 시인)

2023-08-24     경남일보


술이 덜 깬 아침

해장국 먹으러 가는데

한 나무가 손을 번쩍 든다


“나도 들 깨”


―신은숙 시인의 ‘동병상련’


일상의 유머가 디카시가 되는 순간이다. 이때 디카시는 생활 문학이 된다. 일상을 문학화하고 문학을 일상화한다.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전날의 과음과 아침 숙취가 어떤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새 태양은 뜨거워지고 인적조차 드문 보도를 걷는 상황이 눈에 보이듯 훤하다. ‘조금만 마실걸’ 하는 후회가 앞서가며 해장국집을 찾는데, 흔들리는 머리 때문에 표정은 자동으로 일그러졌다. 그때 눈앞에 들어오는 것이라니. 새파랗게 젊은 것이 ‘나도 술이 덜 깼다네?’ 어느 어르신의 고운 손이 쓰셨는지 들깨가 흩어져 있다. 농부의 눈에 잘 띄어 가을용 들깨 모를 사가기 바라는 마음에서 큼지막한 글자로 써놓은 것일 텐데, 그만 띄어쓰기가 돼버린 게다. 그것을 시인의 감각이 지나칠 리 있겠나. 시인처럼 밤새 저 푸른 것들이 참이슬이라도 마셨는지 ‘들 깨’라고 하다니. 순간 시인의 일그러졌던 표정에 웃음이 번지지 않았겠나. 시인·디카시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