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130] 귀가 (임동확 시인)

2023-09-14     경남일보


가자,

몇 번이고 덥혀 논 식탁 위의 찌개가 더 식기 전에

집에 가자, 제 아무리 빨라도 뒤처지기 마련이어서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사랑의 고백이 더 늦기 전에

―임동확 시인의 귀가



베트남에서 우리 일행은 하노이 시내를 구경 중이었다. 오후 5시이 되자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사거리를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또 어디선가 밀물져 오고는 했다. 원피스에 통굽 구두를 신고 오토바이를 탄 아가씨, 가게에서 연밥을 사들고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엄마, 학교 앞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의 오토바이까지 거리는 삽시간에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 매연으로 메워졌다. 신기방기한 일은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아슬아슬하게도 부딪치지 않고 간다는 점이었다. 오토바이가 전체 등록 차량의 80%를 넘는다는 베트남, 일인 일 오토바이를 가졌다고 할 만큼 오토바이가 상징인 나라 사람들의 귀가 풍경을 얼결에 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저 어스름 녘의 한산한 길을 달려 귀가하는 일도 새삼 위안이 되는 것인데, 늦은 귀가를 하는 시속 화자의 정서보다 베트남 사람들의 귀가 풍경을 보고 온 읽는 이의 정서가 이입되어서이다. 시인·디카시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