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가을 중 시주 바가지

변옥윤 논설위원

2023-10-30     경남일보
‘가을 식은 밥이 봄 양식이다’, ‘가을 중의 시주 바가지 같다’는 옛 속담은 이 계절의 풍요로움을 그대로 담고 있다. 봄에 씨뿌려 거두는 수확의 즐거움과 자연이 베푸는 결실로 산과 들에는 먹거리가 넘쳐난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여유로운 시절이다.

▶이 계절을 맞아 사람들은 자연의 축복에 감사하며 축제를 벌인다. 시를 읊고 풍악에 도취하고 가무로 흥을 돋구고 좋은 예술작품에 심취한다. 그윽한 국향도 한몫을 하며 사람들의 가슴 속 깊숙이 자리잡은 아름다움에 대한 원초적 본능을 일깨우는 계절이다. 지역마다 여는 축제의 성격은 달라도 가을의 풍요가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가을은 책읽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예부터 외화내빈(外華內貧)을 경계하며 마음의 양식을 채우도록 권고해 다양한 책읽기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동서고금의 양서를 마음먹고 독서를 할 수 있는 것도 이 계절이다. 말이 몸을 불리며 살찌는 동안 사람은 내면이 살찌는 계절이 가을이다.

▶올해도 올가을 추천도서를 찾는 발길로 서점가는 붐빈다. 평산책방에서는 지난 6개월간 8만여권의 책이 팔렸고 18만여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방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조국 전 장관의 저서라는 점이 그러하고, 전직 대통령이 책방지기로 일하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잊혀진 계절에 잊혀져야 할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가을 중 시주 바가지처럼 양서로 가득한 책방이길 기대한다. 변옥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