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대법원장의 목계지덕

정재모 논설위원

2023-12-11     경남일보
주나라 기성자가 닭싸움을 즐기는 선왕을 위해 싸움닭을 조련할 때였다. 왕이 열흘만에 묻자 ‘허세를 부리고 제 기운만 믿는다’며 아직 안 된다고 했다. 또 열흘이 지났을 땐 ‘닭 그림자만 봐도 당장 덤비려 한다’며 더 조련하겠다고 아뢰었다. 그 열흘 뒤 다시 물었을 때도, 상대를 노려보며 성내는 단계라서 미흡하다며 미뤘다. 또 한차례 열흘이 지나서야 ‘이제 됐다’고 했다.

▶나무로 만든 닭 같이 상대 울음소리에도 태도에 변화가 없는 덕을 갖추어 상대가 감히 대적을 못하고 피해버릴 거라고 조련사는 덧붙였다. 자기 감정을 완벽히 통제하고, 자신의 빛나는 광채나 매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아도 위압감으로 남들이 범접할 수 없게 하는 경우에 흔히 쓰는 성어 목계지덕(木鷄之德)의 출전 우화다. 장자(莊子) 외편에 있다.

▶공정과 신속한 재판을 제1성으로 어제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후보 청문회 때 사람들에게 목계지덕의 일단을 보여줬다고 생각된다. 이틀간의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 질문이나 ‘검증’은 지금까지 어떤 청문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양상을 보였다. 의원 누구도 후보자의 사생활에 관계된 치부를 들추어 캐묻거나 하는 것이 없었다. 따져 파고들 게 없었기 때문일 테다.

▶의원들은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견해를 묻고, 당부하는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위장전입· 음주운전 같은 일도 한 번 없었던 것이리라. 야당이 할퀴고 조롱할 만한 삶을 살지 않은 사람도 세상엔 있다는 걸 보게 된 점이 기분 좋다. 감정 표출 없이, 도발적 눈빛 안 쏘고, 수더분하되 핵심 피하지 않는 답변 자세는 더 좋았다. 정재모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