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반달리즘

한중기 논설위원

2023-12-20     경남일보
경복궁 담장에 ‘낙서 테러’를 벌인 남녀가 범행 나흘 만에 붙잡혔다. 모방범죄까지 발생하면서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된 용의자를 붙잡고 보니 10대 청소년이었다. “불법영상 공유 사이트를 낙서로 쓰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벌인 일이란다. 다음 날 모방범죄를 저지른 20대는 “관심을 받고 싶어 낙서를 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문화유산 훼손 행위는 해외서도 종종 발생해 글로벌 공분을 사기도 한다. 지난 6월에는 로마의 콜로세움 벽면에 20대 청년이 열쇠로 낙서를 했다가 ‘모르고 한 짓’이라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응분의 댓가를 치러야 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문화유산 테러는 2001년 탈레반 정권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바미얀 석불’ 폭파 사건이 손꼽힌다.

▶문화유산이나 예술작품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 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1794년 성난 군중이 무수한 예술품을 파괴하는 것을 본 투르 앙리그레구아 주교가 455년 반달족의 로마 침략에 빗대어 부른 게 유래다. 반달리즘은 통치수단으로, 때론 노이즈마케팅 도구로도 활용되면서 애꿎은 문화유산이 수난을 겪기도 한다.

▶문화유산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역사를 지우는 범죄다. 동시에 미래세대의 역사를 빼앗는 중대범죄다. 문화유산이 설령 복원된다 해도 상한 마음까지 온전히 복원되기는 어렵다. 한 순간의 치기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정부의 철저한 문화재 보호 조치와 함께 개개인의 인식 개선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
한중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