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143] 의자는 안다 (위점숙)

2023-12-21     경남일보



어제는 한 남자가 울고 갔습니다

오늘은 내가 울었습니다


흰 눈이 모두 지웠습니다

ㅡ위점숙 ‘의자는 안다’

임금은 제자리 수준인데 물가는 천정부지로 솟는 상황에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12월 초 대구 일가족 자살 기사를 접하고 14일에는 익산의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회 경제가 좋지 않을수록 일가족 자살 사건도 느는 것이라는 생각이 억측만은 아닐 것이다.

어제와 오늘 남자와 여자가 의자에 앉아서 울다간 사연을 알 수는 없다. 남남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가족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의자에 앉아 편하게 쉬지 못했다는 점과 울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슬픔의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으나, 아무도 모르게 울고 갔다는 것은 심각함을 한층 고조시키는 것이다. ‘흰 눈’은 텍스트상으로는 그들의 행위를 지운 것이지만 의미로는 그들의 슬픔을 지워준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곧 있을 성탄과 함께 일가족이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는 사회, ‘남자’와 ‘내’가 혼자 울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흰 눈’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기를 소망한다. 모두 힘든 한 해를 살아내느라 애 많이 썼다.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