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화석(황숙자)

2024-01-21     경남일보

 

돌의 맥을 짚는다


천년의 미라가 희미하게 웃는다



한때의 푸른 기억이 허물어진 썰물처럼 빠져나간 가슴팍엔

바람으로 떠돌던 한 생이 녹슬어 간헐적 신호음으로 잡힌다


바늘구멍만 한 숨길 사이 붉은 눈물 한 방울

돋을무늬로 비문을 새기고


채 다 뱉지 못한 저 검은 입

건조한 말씀들이 소금 꽃으로 피었다

 

깨고 싶지 않은 꿈 먼 은하로 가는 길


뼛속까지 밴 허기에

막내의 눈물 같은 링거가 맺히고

점점 탄력을 잃은 돌의 맥박이 천년의 잠 속으로 건너가고 있다


나비 한 마리

허공에 스스로 길을 내고 가는 곳이 길이 된다

---------------------------------------------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늘 두려운 일이다.
일상을 벗어나서 한 번도 염탐해 본 적이 없는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 난해한 일이다.
제한의 선을 넘어서 더욱 본인의 거부 의사에 반하며 떠밀려갈 때는
힘의 한계치까지 버텨보지만 결국 자명해지는 결과에는
포기라는 결정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안과 바깥은 공존하면서도 경외의 대상이다. 곤혹한 사실이다.

임종을 지켜보는 눈물이 한 편의 시다.
소멸하는 생명을 두고 돌처럼 차가운 맥을 짚으며 생과 멸의 경계를
가늠하는 정성이 처연하다.
이제 푸른 기억을 거두고 스스로 허공에 길을 내고
나르는 나비 한 마리를 먼 은하로 보내드린다.
생전에 다 뱉지 못한 말씀들을 허공에 걸어두면
그리움은 밤마다 별처럼 빛날 곳이다.
자연의 섭리라지만 이별은 늘 아프다.
경남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