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내 마음 속 오아시스를 찾아

권인경 진주교대 교수

2024-01-22     경남일보


행복은 과연 무엇인가? 갓난 아이 때의 천사 같은 표정을 이루는 그 어떤 동기인가? 객관적 성공을 이루거나 일이 성취됐을 때 마음 속에 뿌듯하게 차오르는 그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건강하면 더 이상의 행복추구는 없는 것일까?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행복이란 느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기대를 이뤘을 때 행복이란 것을 느낀다. 경제력에 따라 요구되는 기대치도 커진다. 아예 경제적인 부분이 어렵다면 먹고 입는 등의 기본요건만 충족되면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이후에는 더 큰 평수의 집에서 살고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 결혼해 건강하게 잘 사는 것, 경제력이 풍족한 이들조차도 현재보다 더 나은 상태를 계속 생각한다.

이는 끝없는 요구이다. 한 번 좋은 일이 생기면 순간은 행복하다고 착각하지만 나중에는 더 큰 강도의 행복이라는 것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좀 더 나은 것, 좀 더 나은 장소, 좀 더 나은 직장, 학교 등등. 이것은 우리가 행복이라 착각하는 쾌락과 성취감 정도이다. 본능적 행복도 있지만 이는 아이가 우유를 먹고 나서 포만감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서양의 ‘happy’라는 단어의 어원은 아이슬란드의 happ(기회, 운)이라고 한다. 서양인의 사고에서 행복이란 어떤 예기치 못한 성공이나 성취, 운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기에 존재하는 목적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있었다.

동양에서는 이상적 행복이나 그 어떤 운 개념보다는 일상의 행복, 하루하루 나날의 행복을 만끽하고 굳이 산 정상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산 아래나 중턱에서 유유자적하며 새소리, 나무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순간의 행복을 느끼고자 했다. 노·장자 사상이나 불교 등의 동양 철학을 관통하는 행복관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 그 자체를 보고 느끼고 그 안에서 우주를 보는 즐거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누구와의 비교, 다른 사물들과 자신 소유의 비교에서 비롯된 더 나은 것으로의 추구는 끝이 없다. 행복은 그 어떤 것과의 비교에서 비롯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마음 안에 행복의 파랑새, 그것이 ‘불성’일 수도 ‘도’일 수도 있고 ‘신’일수도 있다. 또 우리가 이미 이를 지니고 있음에도 잘 알지 못한다.

행복에 대한 본능 저편에는 욕심과 욕구가 도사리고 있지만 내가 느끼고자 하는 자유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그런 것들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오아시스는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