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149]백지 악보 (최정란 시인)

2024-02-01     경남일보


마디마디 불멸의 노래가 되리라


사랑의 음정, 열정의 박자, 슬픔의 도돌이표
순백의 한 소절이 녹아 흐르기 전에 받아 안으리라

 

냉정한 시간의 철제 난간이 그린 첫눈의 꿈
음표도 쉼표도 없는 백치 악보

ㅡ최정란 시인, ‘백지 악보’

시인은 달을 가리키면서 달이라 말하지 않으며, 해를 말하는데 열정이라고 듣게 하는 자다. 세상의 통념을 산산이 깨부수는 존재다. 사회가 재미없는 것은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것을 적용하고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만약 현이가 보는 것을 란이도 똑같이 보는 것처럼,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시각을 가졌다면 세상은 얼마나 지루할 것인가. 시인은 긴 겨울의 추위와 지루함을 사랑의 노래를 예비하는 악보로 환기한다. 무엇이든 ‘첫’은 어설프기 마련이라서 ‘백치’처럼 순수하다는 점까지 환기한다. 그러므로 시인의 세상에서는 백설과 백지와 백치가 한통속이 될 수 있다. 시인·디카시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