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리 작가 에세이집 '삶은 그렇게 납작하지 않아요'

남다르게 복잡한 인생담에서 멸치회 맛이 난다

2024-02-27     김지원


독일 시골에 처박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자처하던 김나리 작가의 오톨도톨한 삶을 담아낸 에세이가 책으로 나왔다. 

책 제목에 더해 그의 삶은 납작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가족관계 연보를 써가며 읽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은 어린시절이 지나고 여러 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자, 작가는 ‘나홀로 하던 조별과제’ 때문에 어느새 독일로 떠나 있다. 

기계공학도 영화편집자이자 미디어 엑셀러레이터로 변화하는 인생 역정이 길어야 2, 3쪽짜리 에세이 속에서 탁구공처럼 통통 튄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복잡할 수 있나 싶은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가 6개 장을 통해 펼쳐진다. 호탕한 문체로 쓰인 에피소드들은 역경 조차 유머러스하게 독자를 사로잡는다. 단숨에 책장이 넘어가게 하는 말맛은 유쾌하다.

‘오픈리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이 책의 한 장을 차지했다지만 취향의 문제라기엔 남부러운 연애담이 펼쳐진다. 

‘피앙세’ 공주님과 알콩달콩한 연애 끝에 강행하는 결혼식은 턱시도냐 웨딩드레스냐는 성별 포지션의 문제 보다는 레즈비언 딸의 결혼식에 “엄마아빠가 당연히 가야지”라는 콧날 시큰해지는 반전이 숨었다. 

5살 여자아이로 ‘재수없게’ 멸치잡이 배에 올라탔던 김나리 작가는 마산에서 강화도로, 서울로 혼자서도 씩씩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베를린으로 훌쩍 떠나 16년, 다시 한국에서의 창업과 폐업까지 몰아치는 그의 납작하지 않은 삶에는 ‘오픈리’로 살아가는 성소수자의 당찬 기운이 엿보인다. 

“모두가 자기 3m 반경에 있는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결국 세상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누군가 김나리 작가에게 말했다. 이 책을 통해 김나리 작가의 수많은 3m 반경 원 속에서 세상의 변화를 슬쩍 맛볼 수 있다. 
책나물. 335쪽. 1만8000원.

김지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