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113)햇살 단추(박라연)

2024-03-24     경남일보

 

느티나무를 건너 거실까지 찰나에 스며드는

아침 햇살 당신은 초인종 소리도 없이 들이닥친 낭보?


일상의 잔뿌리까지 떨렸을까? 이 아침의 달콤한

추억 마차엔 마부가 안 보이는데 마차마저 녹아내리는

햇살에 앉아


지금에 집중할 뿐인데 아름다운 생각이 새어 나와

-여보세요?

저기 저 햇살 단추 좀 눌러주실래요?


긴 겨울나고 온화한 계절이에요. 봄빛에 물든 세상은 윤기로 가득하고요. 사과나무가 있는 마당을 건너 평상까지 스며든 햇살이 눈부셔요. 가까이에서 햇살을 받으니 제가 나무가 된 듯 부풀고 신나요. 아침 햇살이 이리 경쾌하고 가벼울 줄을 겨울 지나면서 잊고 있었나 봐요. 햇살 단추를 읽으면서 이렇게나 들뜨고 설레는 걸 보면요. 그러나 곰곰 보니 추억 마차에 마부가 보이지 않는군요. 일상의 잔뿌리까지 떨리는 아침의 달콤함이 마냥 들뜨고 설레는 일이 아니었어요. 의식하지 않던 게 의식으로 들어오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어요. 그리움이나 쓸쓸함 같은 그런 감정 말이에요. 이 시기쯤이면 기억되는 멀고 아름다운 추억이 제게도 있어요. 햇살 쏟아져 들어오는 마루에 차양을 치고 봄멸치 자작하게 졸여 내오던 엄마가 생각나요. 식구들 둘러앉아 먹었던 아침 밥상 기억하는 일은 행복하면서 외로움이기도 하네요. 추억은 이토록 아름다워서 외롭기도 한 것 같아요. 어느 시인이 그러더군요. 너의 외로움이 회복의 증거가 되기를 바란다고요. 저는 말이 주는 힘을 퍽 믿는 편이에요. 그 말에 기대어 햇살 단추 누르면서 잘 외로워 볼까 봐요. 그러다 보면 먼 외로움까지 다 쓸어안을 수 있는 품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통영문학상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