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 하는 토박이말 나들이[123]
이창수와 함께 하는 토박이말 나들이[123]
  • 경남일보
  • 승인 2024.04.2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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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이
그렇게 많이 내리지는 않지만 어찌된 일인지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으나 비가 잦은 요즘입니다. 낱알비(곡우)가 지났는데 이 무렵 내리는 비는 녀름(농사)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좋은 마음으로 비를 맞아야겠습니다. 지난 글에서 ‘돌’ 이야기를 해 드렸는데 돌이 되려면 먼저 태어나야 됩니다. 오늘은 그 태어나는 일과도 이어지는 말이자 다른 뜻으로도 쓰는 ‘낳다’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저도 이야기를 이렇게 비롯했는데 ‘낳다’라는 말을 보신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우리가 흔히 ‘아이를 낳다’ ‘새끼나 알을 낳다’고 할 때 ‘낳다’를 떠올리시지 싶습니다. 이 때의 ‘낳다’는 “많은 이익을 낳은 사업”과 같은 보기처럼 ‘어떤 결과를 이루거나 가져오다’는 뜻으로도 쓰고 “그는 우리나라가 낳은 천재적인 과학자이다”에서와 같이 ‘어떤 환경이나 상황의 영향으로 어떤 인물이 나타나도록 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뜻과 비슷하다고 하면 비슷할 수도 있는데 ‘낳다’에는 “명주실을 낳다”와 같은 보기처럼 ‘삼 껍질, 솜 털 따위로 실을 만들다’는 뜻이 있고 “모시를 낳다”와 같이 ‘실로 피륙을 짜다’는 뜻도 있습니다. 앞의 뜻으로 가진 말이 ‘낳다’입니다. 이 ‘낳다’에서 온 말이 ‘낳이’인데 여러분도 둘레에서 보셨을 생활한복 가게인 ‘돌실나이’와 이어지는 말입니다.

전남 곡성군 석곡을 옛날에는 ‘돌실’이라고 했고, 그곳에서 짠 삼베는 ‘돌실낳이’라고 했습니다. ‘삼베’ 하면 ‘돌실낳이’가 가장 널리 알려졌고, 무명은 전남 나주에 있는 ‘샛골낳이’가 널리 알려져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곡성 삼베와 나주 무명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니 얼마나 이름이 났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돌실낳이’ 삼베와 ‘샛골낳이’ 무명은 누구나 알아주는 좋은 옷감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낳이’라는 좋은 토박이말을 살려서 널리 썼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낳이’를 말집(사전)에서 찾으면 ‘피륙을 짜는 일 또는 그 피륙’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장이나 땅이름 뒤에 그 고장이나 땅에서 난 피륙을 이르는 일’이라고도 해 놓았습니다. 이러한 뜻풀이를 놓고 볼 때 그리고 ‘낳다’라는 말이 한자말 ‘낳을 산(産)’을 풀이할 때 쓰기도 하기 때문에 어느 고장 땅이름 뒤에 그 고장이나 땅에서 생산한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로 두루 쓰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해낳이 멸치, 통영낳이 굴, 제주낳이 갈치처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곳곳에서 나는 온갖 이름들 앞에 △△낳이 □□와 같은 이름을 붙여 쓰는 날이 얼른 올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많이 자주 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더 나아가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몬(물건) 이름에도 미국산, 일본산, 중국산이 아니라 미국낳이, 일본낳이, 중국낳이라고 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디어디 산’이라는 말을 써야 할 때 ‘어디어디 낳이’라는 말을 떠올려 써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낳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이’라고 써 버리면 ‘낳이’의 본디꼴을 알 수 없게 되어 널리 쓰이지 못하게 막는 꼴이 됩니다. 또 어떤 낱말이 가지고 있었던 뜻을 넓히거나 더해서 쓰는 일에도 마음을 써야겠습니다. 무슨 이름이든지 처음 이름을 지을 때 그 이름이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까지 생각해 보고 지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토박이말바라기 늘맑은빛(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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