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조차 잠시 멈춘 것 같은 망망대해
◇바다와 강, 애국심이 어우러진 다대포
10월 5일(음력 9월 1일)은 부산 시민의 날이다. 정운 장군이 몰운대 앞바다에서 전사한 날이면서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이 부산포 해전에서 승전고를 울린 날이 음력 9월 1일이다. 정운 장군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이순신 장군이 부산포 해전에서 거둔 승전을 기리기 위해 10월 5일을 부산 시민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다대포 몰운대의 아름다움과 정운 장군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만나기 위해 명품 걷기클럽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부산 다대포 몰운대로 향했다. 진주에서 출발하여 1시간 40분쯤 걸려 다대포에 도착했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한 뒤, 다대포해변공원(고우니 생태길·해솔길)-다대포해수욕장-몰운대(몰운대 입구·몰운대시비·다대진 동헌·정운공 순의비·몰운대전망대·화손대·몰운대 입구) 순서로 4.2㎞ 거리를 탐방하기로 했다.
사하구 마스코트인 고우니의 이름을 따서 고우니생태길이라 이름을 붙인 생태길은 나무 데크로 조성돼 있었다. 길옆 갈대숲으로 난 하천에 발목을 담근 왜가리의 배웅을 받으며 생태길을 걸었다. 해변공원 쪽으로 들어서자 다대포매립백지화기념비가 숲속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일출의 장엄함과 낙조의 현란함이 바다·강·철새와 어우러진 다대포, 녹도만호 정운 장군과 다대첨사 윤흥신 공의 애국심이 깃든 다대포가 개발이란 미명 아래 매립될 위기에 처했을 때 다대포 주민들과 부산환경운동연합이 그 훼손을 막아낸 기념으로 세워 놓은 비다. 빗돌을 세운 의미를 되새기며 해변공원 해솔길을 걸어 다대포해수욕장에 닿았다.
◇고운 은모래가 탐방객들을 유혹하는 다대포해수욕장
모래톱의 면적이 엄청 넓었다. 모래 입자가 고와 바람이 훑고 간 흔적이 모래톱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런 연유로 다대포해수욕장은 맨발 걷기의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맨발로 황톳길이나 모래톱을 걷는 ‘어싱(Earthing)’이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은모래가 깔린 다대포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각대는 소리가 밀려드는 파도 소리와 어우러져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었다. 수많은 사람이 아주 느린 걸음으로 어싱을 즐기고 있었다. 광활한 해수욕장과 망망대해가 세월의 속도를 늦춰 건강과 힐링을 안겨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바다도 멋있었지만, 해수욕장 은모래 위에 조성해 놓은 조형물들이 탐방객을 유혹했다. 특히 순백의 ‘그림자의 그림자(홀로 서다)’는 멀리서 봐도 눈이 부실 정도였다. ‘배변의 기술’, ‘원형 그네’, 다대포를 영어 대문자로 적어 놓은 ‘DADAEPO’ 조형물 등이 탐방객들의 눈을 더욱 즐겁게 했다. 그리고 해풍을 이용해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멋있게 보였다. 얕은 바닷물에 비치해 놓은 의자에 앉아 족욕을 하며 물멍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한편 파도에 밀려와 쌓이는 모래가 해수욕장을 넘어 해변공원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단막을 쳐 놓은 모습도 이채로운 풍경이었다.
다대포해수욕장과 몰운대 사이엔 작은 개울이 하나 흐르고 있었다.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몰운대로 들어갔다. 몰운대는 16세기까지만 해도 몰운도(沒雲島)라는 섬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토사가 쌓여 다대포와 섬을 이어놓는 바람에 육계도가 됐다. 몰운대는 육지 끝과 바다의 시작이란 지형적 특징상,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모든 것이 시야에서 가려지기 때문에 몰운대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마침 필자가 탐방한 날은 날씨가 맑아 몰운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곰솔이 지키고 선 ‘정운공 순의비’
몰운대 입구엔 겹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잘 정비된 둘레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동래부사를 지낸 이춘원이 쓴 시를 새겨 놓은 ‘몰운대시비’가 길섶에 서 있었다. 해풍에 강한 곰솔들이 도열을 한 채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수많은 곰솔이 마치 정운 장군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곰솔들의 호위 속에 다대진 동헌을 지나 ‘정운공 순의비’에 도착했다.
몰운대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였으며 임진왜란 때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 역할을 한 녹도만호 정운 장군이 이 몰운대 앞바다에서 왜선 500척을 맞아 싸웠는데 이곳 지명이 몰운대란 말을 듣고 몰운대의 운(雲)과 자기 이름의 운(運)이 음이 똑같고, 몰(沒)이란 글자가 ‘죽다’의 뜻을 가진 한자라 ‘내가 몰운대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고 예언을 한 뒤 죽을 힘을 다해 왜적을 무찌르다 그 예언처럼 정운 장군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운 장군의 8대손인 정혁이 다대포 첨사로 왔을 때 장군의 애국심과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몰운대 가장 높은 곳에다 ‘정운공 순의비’를 세워 놓았다. 꿋꿋하게 선 곰솔들이 순의비를 지키고 있었다.
몰운대 전망대에는 허물어져 가는 초소가 하나 서 있었다. 사스레피나무 작은 꽃들이 건네는 인사를 받으며 닿은 자갈마당 옆 갯바위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쥐섬은 부지런히 파도가 일으킨 거품들을 주워 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곰솔과 동백이 번갈아 길을 터놓은 둘레길을 따라 화손대에 닿았다.
모자를 닮은 모자섬과 화손대 사이에는 화준구미라는 뱃길이 있는데, 이 뱃길을 따라 이순신 장군의 함선이 왜선을 격파했고, 수영선수 조오련이 이곳을 지나 대마도까지 헤엄쳐 간 곳이라 한다. 지난 역사가 몰운대 앞바다에서 시퍼렇게 살아 출렁이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곰솔이 늠름하게 서서 바다를 지키는 모습을 보며 구름과 안개를 다스리는 몰운대를 떠나왔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10월 5일(음력 9월 1일)은 부산 시민의 날이다. 정운 장군이 몰운대 앞바다에서 전사한 날이면서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이 부산포 해전에서 승전고를 울린 날이 음력 9월 1일이다. 정운 장군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이순신 장군이 부산포 해전에서 거둔 승전을 기리기 위해 10월 5일을 부산 시민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다대포 몰운대의 아름다움과 정운 장군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만나기 위해 명품 걷기클럽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부산 다대포 몰운대로 향했다. 진주에서 출발하여 1시간 40분쯤 걸려 다대포에 도착했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한 뒤, 다대포해변공원(고우니 생태길·해솔길)-다대포해수욕장-몰운대(몰운대 입구·몰운대시비·다대진 동헌·정운공 순의비·몰운대전망대·화손대·몰운대 입구) 순서로 4.2㎞ 거리를 탐방하기로 했다.
사하구 마스코트인 고우니의 이름을 따서 고우니생태길이라 이름을 붙인 생태길은 나무 데크로 조성돼 있었다. 길옆 갈대숲으로 난 하천에 발목을 담근 왜가리의 배웅을 받으며 생태길을 걸었다. 해변공원 쪽으로 들어서자 다대포매립백지화기념비가 숲속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일출의 장엄함과 낙조의 현란함이 바다·강·철새와 어우러진 다대포, 녹도만호 정운 장군과 다대첨사 윤흥신 공의 애국심이 깃든 다대포가 개발이란 미명 아래 매립될 위기에 처했을 때 다대포 주민들과 부산환경운동연합이 그 훼손을 막아낸 기념으로 세워 놓은 비다. 빗돌을 세운 의미를 되새기며 해변공원 해솔길을 걸어 다대포해수욕장에 닿았다.
◇고운 은모래가 탐방객들을 유혹하는 다대포해수욕장
모래톱의 면적이 엄청 넓었다. 모래 입자가 고와 바람이 훑고 간 흔적이 모래톱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런 연유로 다대포해수욕장은 맨발 걷기의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맨발로 황톳길이나 모래톱을 걷는 ‘어싱(Earthing)’이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은모래가 깔린 다대포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각대는 소리가 밀려드는 파도 소리와 어우러져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었다. 수많은 사람이 아주 느린 걸음으로 어싱을 즐기고 있었다. 광활한 해수욕장과 망망대해가 세월의 속도를 늦춰 건강과 힐링을 안겨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바다도 멋있었지만, 해수욕장 은모래 위에 조성해 놓은 조형물들이 탐방객을 유혹했다. 특히 순백의 ‘그림자의 그림자(홀로 서다)’는 멀리서 봐도 눈이 부실 정도였다. ‘배변의 기술’, ‘원형 그네’, 다대포를 영어 대문자로 적어 놓은 ‘DADAEPO’ 조형물 등이 탐방객들의 눈을 더욱 즐겁게 했다. 그리고 해풍을 이용해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멋있게 보였다. 얕은 바닷물에 비치해 놓은 의자에 앉아 족욕을 하며 물멍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한편 파도에 밀려와 쌓이는 모래가 해수욕장을 넘어 해변공원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단막을 쳐 놓은 모습도 이채로운 풍경이었다.
다대포해수욕장과 몰운대 사이엔 작은 개울이 하나 흐르고 있었다.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몰운대로 들어갔다. 몰운대는 16세기까지만 해도 몰운도(沒雲島)라는 섬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토사가 쌓여 다대포와 섬을 이어놓는 바람에 육계도가 됐다. 몰운대는 육지 끝과 바다의 시작이란 지형적 특징상,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모든 것이 시야에서 가려지기 때문에 몰운대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마침 필자가 탐방한 날은 날씨가 맑아 몰운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곰솔이 지키고 선 ‘정운공 순의비’
몰운대 입구엔 겹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잘 정비된 둘레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동래부사를 지낸 이춘원이 쓴 시를 새겨 놓은 ‘몰운대시비’가 길섶에 서 있었다. 해풍에 강한 곰솔들이 도열을 한 채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수많은 곰솔이 마치 정운 장군의 분신처럼 느껴졌다. 곰솔들의 호위 속에 다대진 동헌을 지나 ‘정운공 순의비’에 도착했다.
몰운대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였으며 임진왜란 때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 역할을 한 녹도만호 정운 장군이 이 몰운대 앞바다에서 왜선 500척을 맞아 싸웠는데 이곳 지명이 몰운대란 말을 듣고 몰운대의 운(雲)과 자기 이름의 운(運)이 음이 똑같고, 몰(沒)이란 글자가 ‘죽다’의 뜻을 가진 한자라 ‘내가 몰운대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고 예언을 한 뒤 죽을 힘을 다해 왜적을 무찌르다 그 예언처럼 정운 장군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운 장군의 8대손인 정혁이 다대포 첨사로 왔을 때 장군의 애국심과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몰운대 가장 높은 곳에다 ‘정운공 순의비’를 세워 놓았다. 꿋꿋하게 선 곰솔들이 순의비를 지키고 있었다.
몰운대 전망대에는 허물어져 가는 초소가 하나 서 있었다. 사스레피나무 작은 꽃들이 건네는 인사를 받으며 닿은 자갈마당 옆 갯바위는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쥐섬은 부지런히 파도가 일으킨 거품들을 주워 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곰솔과 동백이 번갈아 길을 터놓은 둘레길을 따라 화손대에 닿았다.
모자를 닮은 모자섬과 화손대 사이에는 화준구미라는 뱃길이 있는데, 이 뱃길을 따라 이순신 장군의 함선이 왜선을 격파했고, 수영선수 조오련이 이곳을 지나 대마도까지 헤엄쳐 간 곳이라 한다. 지난 역사가 몰운대 앞바다에서 시퍼렇게 살아 출렁이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곰솔이 늠름하게 서서 바다를 지키는 모습을 보며 구름과 안개를 다스리는 몰운대를 떠나왔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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