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섬 늑도[3]성난 파도넘어 연안항로의 쉼터
비밀의 섬 늑도[3]성난 파도넘어 연안항로의 쉼터
  • 임명진
  • 승인 2024.07.1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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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항로 무역의 길 이은 섬, 유물은 알고 있다
남해안에는 백여 개의 섬들이 있다. 그 중에게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섬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이 살기 힘든 무인도다. 그 수많은 섬 중에서 어떻게 늑도에서 국제무역이 이뤄졌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려면 늑도라는 섬이 가진 남해안에서의 지리적 위치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2000년 전 고대의 바닷길은 항해술과 선박 기술의 한계로 연안항로가 발달했다. 내륙에서 가까운 섬들 사이를 필연적으로 거쳐야 했는데 남해안의 경우에는 지형상 거센 물살이 흐르는 구간도 지나야만 했다.


◇남해안의 거센 물살 ‘대방수로’

지금의 늑도는 남해·창선대교로 내륙화 되었지만, 과거에는 육지에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늑도와 육지 사이에는 ‘대방수로’라고 불리는 남해안에서 두 번째로 빠른 물살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남해안에서 가장 빠른 물살은 명량 해전으로 널리 알려진 전남 해남군과 진도 사이에 있는 울돌목이다.

김상일 사천시 학예연구사는 “늑도 바로 앞에 있는 초양도와 본토 사이에 대방수로가 흐르고 있는데 울돌목의 물살이 시속 약 20㎞로 가장 빠르고, 대방수로가 그 다음으로 시속 약 10㎞의 강한 물살이 흐르고 있다”라면서 “물이 날 때나, 사리 때는 모터가 달렸어도 크기가 작은 배는 대방수로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 버거울 정도”라고 설명했다.

대방수로의 물살은 인근 사량도 방면으로 흘러간다. 늑도 부근에는 일찍부터 대방수로의 물살을 이용해 멸치 등 고기를 잡는 전통어로 방식인 죽방렴이 발달해 왔다.

이런 늑도 주변의 환경은 늑도에 거주하는 이들에게는 육지에서 적대 세력의 공세를 막아내고,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 됐다.

2000년 전 무역선들은 경험적으로 대방수로가 항해하기에는 위험한 구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대방수로를 피해 다른 항로를 택했을 것이다. 마침 대방수로 지척에 강한 태풍에도 배들이 비교적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늑도가 있었고 남해안의 중간 거리 지점에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다른 항구보다 더 기항지로 선호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해상무역 장악한 장보고

사실 섬은 무역을 하기에는 적절하지는 않다. 늑도만 보더라도 인근에 정박하기 좋은 육지의 만이 있는데 굳이 물살이 강해 접근하기 불편한 섬에서 교역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신윤호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연구위원은 “한반도의 남해안은 지형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조류의 흐름도 시시각각 변한다. 그런 지형을 누가 잘 알고 있는지, 그런 지형을 어떻게 잘 이용하는지가 해상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한·중·일의 고대 해상 무역로에서 남해안은 반드시 스쳐 지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이는 역사의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838년 무렵 당나라에서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규슈의 하카타에서 출발해 남해안을 거쳐 간 일본의 승려 엔닌은 그의 저서‘입당구법순례행기’에 당시 동아시아의 바닷길을 장악한 ‘장보고’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곳이 늑도에서 멀지 않는 지금의 전남 완도이다.

신 연구위원은 “장보고의 사례뿐만 아니라 여러 기록을 보더라도 남해안은 매우 오랫동안 동아시아 해상교역에서 중요한 교역로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해안에는 늑도와 동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해상 유적이 발견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전남 해남의 군곡리 유적과 김해의 봉황동 유적이 그것이다.

김건수 목포대학교 박물관장은 “나침반이 없던 고대에는 바다에서 길을 찾기 위해 무조건 내륙과 가까운 연안항로를 이용해야 했다”라면서 “식량도 구하고 비바람도 피해야 해서 중간중간마다 배가 정박해 쉴 수 있는 기항지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고대 해상 무역항이 남해안에 존재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고대 국제 무역항로는?

그렇다면 당시의 해상무역 항로는 어떻게 연결되고 있었을까? 늑도와 관련해 학계는 늑도에서 출토되는 유물 대부분은 낙랑군과의 교류를 통해 반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낙랑군은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무너뜨린 한나라가 한반도 북부, 지금의 대동강이 있는 평양 일대로 추정되는 곳에 설치했다. 이때부터 국제 원거리 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는 견해도 있다.

중국 측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낙랑군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가다가 다시 동쪽으로 가면 7000여 거리, 거기서 1000리를 더 가면 대마도가 나온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홍보식 공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당시 동아시아 무역을 넓게 보면 중국의 동북 지방인 양자강 유역부터 시작해서 산둥반도와 발해만, 그리고 낙랑군을 거쳐 서해안을 따라 내려오다가 남해안에 와서 늑도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루트가 본격적으로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그 시기부터 중국에서 일본 열도까지 한반도를 통해서 이어지는 동아시아 해상 무역로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게 되는데, 늑도에서 바로 그 시대의 모습을 아주 잘 드러내는 유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남해안의 해상무역을 늑도만이 주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출토되는 유물이 타 유적에 비해 훨씬 집중해서 출토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을 보면 여러 무역항 중에서도 거점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늑도에서 바라본 육지 전경. 앞에 초양도가 보인다. 사천시의 해상 관광케이블카가 초양도까지 연결돼 있다.

 
늑도 섬 주변 지형



 
신윤호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연구위원

“고대 해상무역, 육로보다 더 활발”

신윤호 해군사관학교 연구위원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해상 무역로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비단길은 육로에서 엄청나게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고, 넓은 사막을 통과하거나 상단을 노리는 주변 세력의 침탈도 걱정해야 했기 때문에 안전하지가 않았다.

반면 해상무역은 육지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수송기간도 상대적으로 단축되었기 때문에 해상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선박 기술과 항해술로는 긴 항해를 하려면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해류와 바람을 이용하는 가장 빠르고, 거리가 짧은 항로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이어져 왔다.

그렇게 선택된 당시의 고대 해상 무역로가 지금의 남해안 늑도를 지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금도 남해안의 해상 쓰레기는 해류를 따라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다. 반면 과거에는 이 해류와 바람을 따라 왜구들이 남해안으로 침투해 들어 왔다.

이런 물길을 가진 늑도는 과거에서부터 해상 교통의 중심지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주요 격전지가 늑도 주변의 바다에서 벌어진 점도 주목할 점이다.

통일신라 시대에 동아시아 무역을 제패한 장보고가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늑도는 오늘날 고속도로 요금소나 휴게소처럼 항해 도중 기항도 하고, 무역도 하는 장소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작은 섬, 늑도에 이토록 많은 유물이 출토되는 것을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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