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마산에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이하는 극단이 하나 있다. 바로 극단 마산이다. 극단 마산은 한국 신극의 선구자인 이광래(1908~1968)가 일궈 놓은 마산연극의 텃밭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파수꾼이랄 수 있다. 그래서 극단 마산의 지나온 궤적을 조망해 보려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마산연극의 역사부터 잠깐 살펴보는 것이 순리겠다. 마산연극의 역사가 유구하기 때문이다.
마산연극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소극장 수좌(壽座·고토부키자)의 개관과 함께 시작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마산 최초의 소극장인 수좌가 개관됨으로써 마산연극이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가는데, 그 기간은 얼추 계산해도 100년이 넘고 정확하게 말한다면 107년이나 된다. 더구나 1921년에 김우진·윤심덕·홍난파 등으로 조직된 동경 고학생동우회가 수좌에 와서 공연한 바도 있고, 그 유명한 박승희의 토월회가 수좌에 와서 공연했을(1925년) 정도로 수좌는 마산연극의 안태본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일제강점기에 창단된 극단들을 일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기록으로 입증되는 마산 최초의 극단은 1932년에 창단된 극예사(劇藝社)고, 회원으로는 리훈산·천금막·윤종환·박성환·김주산 등인데, 그런 사실은 동아일보(1932년 7월 2일)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1934년엔 표현무대가 창단되는데, 창단 회원은 이광래와 김지홍 등이다. 따라서 1930년대는 극예사와 표현무대 멤버들이 마산연극을 주도하기에 그들을 마산연극의 1세대라 할 수 있다.
1940년대는 이일래(이광래의 친형으로 ‘산토끼’ 작곡)·이연옥·김수돈·정진업 등이 마산 연극계를 주도해 나간다. 1950년대는 6·25 전쟁의 발발로 서울 연극인 김동원·복혜숙·김선영 등이 마산으로 피난 와서 마산 연극인들과 교류함으로써, 아이로니컬하게도 마산연극은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전보다 훨씬 더 활발해진다. 1954년엔 청문극회가, 1958년에 극예술연극회가 각각 창립된다.
1960년대는 배덕환·한기환·한하균 등이 마산예술인극장(1962년)과 한국연극협회 마산지부(1963년)를 창립하고는 마산연극계를 주도해 나간다. 1970년대의 마산연극계에는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중의 하나는 경남대 완월강당의 개관이다. 완월강당은 개관 때부터 1990년대까지 대략 20여 년간 마산연극의 메카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요, 그 무대에서 수많은 연극이 공연되고, 그 공간에서 수년간 경남연극제가 개최되기에 하는 말이다.
특히나 1970년대 초기는 대학 연극의 전성시대랄 수 있다. 기성 극단의 활동은 전무(全無)한 반면, 경남대 연극부의 활동은 활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경남대 완월강당이라는 좋은 공연장과 배덕환과 한기환이란 두 연극전공 교수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5년엔 극단 마산 까페 떼아뜨르가, 1977년엔 경남대 극회(이하 경극연)와 불씨촌, 무대예술 등이 각각 순차적으로 창단된다. 그리고 1980년대가 되면, 마산연극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할 정도로 아롬·사랑방·소리·무대·마산 등의 극단들이 창단된다.
드디어 1984년 5월이 되면, 극단 마산이 그 고고의 성을 울린다. 경극연 출신인 정석수·현태영·장해근 등이 극단 마산을 창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단 마산은 1986년 초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필자가 극단 대표를 맡으면서부터다. 동년 4월 개최된 경남연극제에서 ‘삼각파도’(이상용 작·현태영 연출)로 대상 수상, 그해 제4회 전국연극제(현 대한민국연극제)에 경남 대표로 참가해 극단 새출발을 만방에 고한 것, 동년 3월 100여 석 규모의 전용 소극장 개관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전용 소극장은, 마산연극은 물론 경남연극의 메카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된다. 이 소극장에서 10여 년간 ‘신의 아그네스’·‘사람의 아들’·‘위기의 여자’와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이 공연되기 때문이요, 이 공간에서 경남소극장축제와 전국소극장축제가 무려 12년간이나 개최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극단 마산은 전국소극장축제를 개최함으로써 전국의 소극장운동을 주도해 나가기도 한다.
극단 마산은 지난 40년 동안 경남연극의 지평 확대와 활성화를 선도해 왔다. 전술한 12년간 전국소극장축제 개최를 비롯해 26년간의 도내 순회공연, 26년간 마산국제연극제 개최, 12년간의 일본 순회공연, 중국 공연에 나섰다. 이와 함께 세계 80여 개국 연극대표단이 참가한 ‘이아타(aita/iata) 세계연극총회’와 ‘이아타(aita/iata) 세계연극제’ 개최(2007년), 세계환경연극제 개최(2008년), 수년간 국제연극심포지엄과 연극포럼 개최 등이 그런 사실을 입증해 준다.
또한 극단 마산은 연극 아카이브 작업에도 매진해 왔는바, 마산연극관 개관(2012년), ‘마산연극’·‘경남연극’ 발행, ‘연극으로의 긴 여로’ 등 10여 권에 달하는 각종 연극 관련 서적 발간, 각종 희귀자료 수집·보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전국연극제(현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두 번이나 대통령상을 받고, 역대 경남연극제에서 여러 차례 대상을 받은 극단 마산.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느낌, 극락 같은’), 30주년 기념 공연(‘청춘극장’), 40주년 기념 공연(‘굿, 문’)을 가진 극단 마산.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와 ‘파란’ 등 207회의 정기 공연 기록을 가진 극단 마산.
그런 극단 마산에서 활동한 연극인들도 많다. 연출로는 현태영·문종근·김종갑·최성봉, 배우로는 송판호·안필자·서용수·김소정·진경호·윤주형·문정대·천성진·성상석·홍지민·김위영·이상현·정진영·김정희 등이 대표적이다. 스태프로는 신찬식·조강래·정석수·장해근·김칠현·송주호·김경선·김태준 등이 있다. 극단 마산이여, 영생(永生)하라.
이상용 전문가(문학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