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01>
오늘의 저편 <101>
  • 경남일보
  • 승인 2012.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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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잠깐 나 좀 보자.”

여주댁의 얼굴표정이 싸늘해졌다. 아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보아버리지 않았던가. 며느리와 한통속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예, 어머니.”

민숙은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 남편을 대신하여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너희 부부 자식을 갖지 않기로 아주 단단히 작정을 한 모양이구나.”

여주댁은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주며 며느리를 노려보았다.

“아, 아뇨 절대로 아닙니다.”

민숙은 어디까지나 남편 혼자의 생각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래?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더냐?”

여주댁은 온몸의 신경이 칼날처럼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평소에 매사를 경솔하게 처리하는 아들이 아니었다. 그런 아들이 자식을 갖지 않기로 했다면 이유는 딱 한가지 밖에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싸하게 훑었던 것이다.

“얼마 전부터인 것 같았는데 확실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민숙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고 말 것만 같은 얼굴이 되었다.

“왜 자식을 안 갖겠다고 하더냐? 왜? 무엇 때문에?”

푸르르 끓어오르는 속을 숨기며 여주댁은 공허하게 중얼거렸다.

“그냥 걱정이 되나 봐요. 옷을 제가 벗겨줄 때가 많거든요.”

민숙은 양말도 벗지 않고 드러누워 버리는 남편의 몸을 거의 매일 이 잡듯이 샅샅이 뒤져봐도 건강하기만 하더라고 넌지시 덧붙였다.

“그렇지 건강하지? 건강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건강’이라는 낱말이 구세주처럼 여겨지는지 여주댁은 갑자기 웃음까지 찔끔찔끔 흘렸다. 나병 발병이후 남편은 스스로 아들 가까이엔 절대로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수백 번을 되생각해도 아들이 그 병에 걸릴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나병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고 있는 건 유전병이 아니라는 그것이었다.

여주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보약을 민숙 앞에 내밀었다. 아이 잘 들어서게 하는 약이라고 굳이 설명해 주며 정성껏 달여 먹어야 한다고 못을 단단히 박았다. 다음에 다니러 올 때에는 좋은 소식 꼭 듣게 해 달라고 우물을 파기도 전에 구수한 숭늉을 내놓으라고 하기까지 했다.

“저어, 어머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 말 하지 마라.”

며느리의 입을 무조건 막았다.

“환약으로 된 건 없을까 해서요.”

“달이기 싫어서 그러냐?”

도끼눈을 떴다.

“아, 아뇨. 약 달이는 냄새가 나면 그이가 눈치를 챌 것 같아서요.”

얼른 둘러댔다.

“듣고 보니 그렇구나. 달여 놓을 테니 와서 먹고 가거라.”

즉석에서 해결방법을 말했다.

“매일매일요?”

바로 반문했다.

“열흘 분량이다. 네 신랑 출근하고 나면 넌 특별히 할 일도 없지 않니?”

여주댁은 더는 토를 달지 말라는 뜻의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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