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나무를 땔감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상적인 문화의 영향과 일제 강점기·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산림이 대부분 민둥산으로 변해버렸다. 1932년 김동인의 소설 ‘붉은산’에서 묘사된 것처럼 철저하게 헐벗은 산 일색이었다.
어린 시절 공휴일인 식목일에는 학교를 가지는 않았지만 나무나 꽃을 심어야 하는 숙제가 있는 날이었다. 메아리가 살 수 없는 붉은 산에 옷을 입히는 것처럼 나무를 심어야 하는 사명감이 있는 날이었다. 메아리라는 동요가 널리 불리던 시절이었다.
식목일은 왜 많고 많은 날 중 4월 5일로 정해졌을까?
그 이유는 4월 초 24절기 중 하나인 청명 무렵이 나무를 심고 키우는 데 가장 적합한 날씨이기도 하고, 조신시대 성종이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군 날(677년 음력 2월 25일,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이 바로 이 날이기 때문이다. 1910년 4월 5일 순종이 친경제를 거행할 때, 손수 밭을 갈고 나무를 심었던 데서 유래했다.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이유는, 우리나라가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연간 휴일이 많아졌다 하여, 적당한 휴일수를 유지하기 위해 식목일(4월5일)을 공휴일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식목일 무렵 많이 들리던 ‘메아리’라는 동요의 가사는 전쟁으로 황폐화된 산림을 안타까워 하며 지은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산림녹화는 전 국민의 관심사였다. 1960년대에는 학생들이 나무에 해를 끼치는 송충이 박멸에 동원되기도 했다. 공휴일이었던 식목일에는 남녀노소 산을 찾아 나무를 심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파격적인 설정과 금기시 되는 소재를 가지고 만드는’ 소위 막장드라마라고 욕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되는 드라마들이 있다.
사극에서 다루는 역사적 인물 중에서 ‘장희빈’ 만큼 드라마의 단골소재로 사용되는 인물도 드물다. ‘장희빈’이라는 인물은 인물 자체가 워낙에 질곡의 삶을 살아 온 만큼 자극적인 이야기거리가 많기에 잊을만 하면 재탕 삼탕 소재로 사용하는 단골 중의 단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장희빈은 영화로는 두 번, 드라마로는 일곱 번 제작됐다. 1960년대 라디오연속극에 처음 출연한 ‘장희빈’은 드라마에서는 윤여정,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김태희 등이 장희빈을 연기했고, 영화에서는 김지미, 남정임이 연기한 바 있다. 역대 장희빈 역을 맡은 여배우는 무조건 뜬다는 낭설 아닌 낭설이 퍼지기도 했다.
한국 영화의 최전성기라는 1960년대에 장희빈을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이 선보였다.
1961년 정창화 감독이 연출한 김지미 김진규 주연의 ‘장희빈’과 정창화 감독의 조연출이었던 임권택 감독이 스승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가 남정임 신성일 주연의 ‘요화 장희빈’이다. 이 영화는 칼라 씨네마스코프로 만들어졌는데, 임권택 감독의 첫 번째 칼라영화이기도 하다.
제목 부터도 ‘요화’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니 어지간히도 나쁘게 그려졌나보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본 후 ‘나쁜×’이라며 욕을 하고 나왔을까.
박은정 편집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