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영 창신대 교수
미국 서부를 생각하면 금문교가 떠오른다. 렌터카로 금문교를 건너기 위해 그 차에 대한 주의사항과 책임에 대한 약관을 읽어야 했다. 차 열쇠를 받고 차에 오르기 전까지 재빨리 읽고, 날인할 것을 요구받는다. 황당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빨리 꼼꼼히 읽고 제대로 판단해야 했다.
신학기에 새 교재와 공책을 가지고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을 본다. 대학생들은 학기 중 궁금함과 어려움을 쓴 종이를 가지고 교수와 상담을 한다.
교수님은 대학 다닐 때 어떻게 전공 공부를 하셨어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학생에게 강의 중 본인의 책상에 어떤 필기구를 준비했는지 묻는다.
대학 강의는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과 그 지식을 습득하려는 학생 간의 노력으로 다양한 사실들을 만들어 낸다. 효과적인 지식 습득하는 방법에는 ‘자유롭고 가벼운 글쓰기’가 있고, 연필로 낱장의 이면지에 기록하여 학습의 결실을 거둔다.
연필의 장점은 쓴 것을 지우고 새로 쓸 수도 있고, 강한 느낌의 표현을 위해 세게 눌러 쓸 수 있는 것이다. 빨간 볼펜, 색연필로 밑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은 정해진 부분에 생각을 집중하는 효과가 있다. 이면지 쓰기는 종이를 아끼는 행동이고, 새 종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과 가벼움을 얻는다. 공책은 페이지가 정해져 있어서 앞뒤 페이지를 바꿀 수 없기에 집게로 집은 낱장의 이면지로 페이지를 바꾸어 가며, 학습한 내용을 구분하고 분류한다.
글쓰기는 세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강의에서 들려오는 용어, 단어, 개념들을 자유롭게 쓰는 과정. 두 번째는 그 단어들에 질서와 논리를 부여하는 과정. 마지막은 일정한 분량의 글로 사실을 완성 시키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즐겁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자유로운 글쓰기의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시작부터 자유로운 글쓰기는 제쳐두고 세 번째 단계의 글쓰기를 시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강의 시간의 글쓰기, 일상생활의 메모, 다양한 방식의 일기를 통해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자유로운 글쓰기는 필력을 높이고,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지성을 만들어 낸다. 103세의 김형석 교수가 국어대사전을 즐겨 찾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인간이 논리적으로 쓴 문장과 잘 쓴 글씨는 화려한 컴퓨터 자료보다 아름답다. 결국 새로운 사실은 글을 통해 아름다운 불변의 실체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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