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스프레차투라의 정신으로
[경일춘추]스프레차투라의 정신으로
  • 경남일보
  • 승인 2024.04.28 14: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두경 갤리리 DOO 대표
정두경 갤리리 DOO 대표


최근 들어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라는 이탈리아 말을 종종 접하게 된다. 며칠 전 들었던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선생의 강의에서도 스프레차투라가 등장했다. 이 단어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추구하는 멋의 방식으로 ‘어려운 일을 담담하면서도 우아하고 세련되게 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가 그린 ‘카스틸리오네의 초상화’는 서양미술사와 이탈리아 복식사에서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카스틸리오네가 쓴 유럽 귀족들의 교양 지침서인 ‘궁정론’에서 스프레차투라의 개념이 비롯됐다. 그는 책에서 “아페타찌오네를 피하고 스프레차투라를 행하라” 라고 했는데 복장을 너무 과하게 꾸미는 것은 피하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꾸미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이 말은 요즘에는 우아함을 얻는 가장 보편적인 법칙으로 쓰이며 어려운 일을 쉽고도 노련하게 해내는 방식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내가 처음 패션 사업을 시작했던 2006년 봄 열흘 간 밀라노에 머물렀을 때 기차를 타고 카스틸리오네가 태어난 만토바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라파엘로가 그린 ‘카스틸리오네의 초상화’ 란 작품을 미처 알기 전이었다. 이 작품은 지금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데 1992년 처음 파리에 갔을 때 루브르 박물관에서 수많은 작품 속에서 이 작품을 알아보지 못했다.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도난당했을 때 그 자리에 걸렸던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한다.

4년의 짧은 시간 패션사업을 하다가 2010년 갤러리를 오픈했고, 15년 동안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나는 엄살 부리거나 징징대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마치 물 밑으로는 쉬지 않고 갈퀴를 움직이면서도 겉으로는 우아한 날갯짓을 보이는 백조의 자태와도 비슷했을 것이다. 삶이 처음부터 끝까지 순탄하기만 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인생의 어떤 구간에서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나게 된다. 그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스프레차투라의 정신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무척이나 쉬운 것처럼 해내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스프레차투라의 정신으로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고도 무심하게, 때로는 우아하게 시간의 강을 건너가보자.

다시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라파엘로가 그린 ‘카스틸리오네의 초상화’를 볼 것이다. 연륜이 더해지며 알게 된 만큼의 새로운 시선으로 그 작품과 마주하게 될 시간을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