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우리는 망국의 손님인가 구국의 주인인가
[경일시론]우리는 망국의 손님인가 구국의 주인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24.04.2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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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1960년대만 해도 레바론은 국제 물류 및 금융의 중심지로 ‘중동의 파리’라고 불렸다. 하지만 중동전쟁으로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정치가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해 외세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나라가 됐다. 한때 버마(지금의 미얀마)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잘살았다. 그런데 1960년대 초 비슷한 시기에 한국과 버마에는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한국은 개방과 산업화의 길을 걸었는데, 버마는 폐쇄적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걸고 군부가 경제까지 좌지우지하다가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나이는 76세다. 100세를 넘기는 2050년쯤이면 어떤 모습일까? 흥망성쇠가 엇갈린 나라들의 교훈을 보면 구국의 정치와 망국의 정치가 있다. 아무리 경제가 튼튼해도 정치가 멀쩡한 나라를 어이없이 말아먹을 수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얼씬거리는 망국의 정치가 있다면 단연 포퓰리즘 복지병이다. 어찌 보면 포퓰리즘은 선거제를 가진 나라의 고질병(?)인지도 모른다.

불굴의 리더십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처칠은 1945년 가을 경악했다. 선거에서 달콤한 복지를 내건 노동당에 패배한 것이다. 한동안 복지병을 앓던 영국은 대처의 개혁으로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슈뢰더 개혁으로 되살아난 독일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정권의 오일달러 퍼주기 복지에서 계속 헤매다가 국민의 80%를 극빈층으로 몰아넣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국민의 주인의식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국가의 앞날에 대해 국민이 손님이 돼선 안 되고, 책임감있는 주인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정권에서부터 국가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현 추세로 나랏돈을 퍼주다간 국민연금은 2050년대 중반에는 바닥이 난다고 한다. 2050년이면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 2050년에는 경제활동인구 4명이 3명의 노인인구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고된 재정 파탄과 초고령화 쓰나미가 동시에 덮치면 대한민국은 100세에 그냥 주저앉는 것으로 예측된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의 한심한 형태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우리 모두가 결연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포퓰리즘을 거부하고 복지병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포퓰리즘 정책을 계속 선호한 베네수엘라 국민은 지금 손님처럼 나라 밖으로 나가 수백만명이 해외에서 떠돌고 있다. 반면 한때 위기에 몰렸던 그리스는 주인의식을 가진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단호히 거부하고 개혁의 길로 나서고 있다.

선거를 치르는 나라에서 재정 건전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선거에서 질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재정 건전화 개혁에는 당연히 고통 분담이 따른다. 우리가 달콤한 복지에 탐닉해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을 거부하면 우리는 이 나라의 손님밖에 안된다. 2050년에 초고령화로 인한 폭발적 재정 수요로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도록 주인의식을 가지고 개혁의 수레바퀴를 같이 굴려야 한다.

구한말 조선 땅을 밟은 영국의 이사벨 비숍 여사가 멋진 말을 했다. “조선 민족은 우수하다! 무능한 권력 때문에 주인의식 없이 무기력하지만, 앞으로 세상이 놀랄 일을 해낼 것이다.” 그 70년 후 한국인은 ‘하면 된다’는 놀라운 주인의식을 가지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우리 민족에겐 묘한 저력이 있다. 평소 손님처럼 행동하다가도 정작 나라가 어려워지면 특유의 주인의식으로 나라를 바로 세웠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가 그 좋은 예이다.

지금이야말로 주인의식을 발휘해 망국의 포퓰리즘을 단호히 거부하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때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손님처럼 나라를 탈탈 다 털어먹은 부끄러운 세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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