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보다 비움이 더 중요한 건축
채움보다 비움이 더 중요한 건축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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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완만하게 경사진 지형을 있는 그대로 둔 채 집을 지었다. 성토하고 복토하는 토목공사를 최소화했다. 본래의 모습을 일그러뜨리지 않은 게 좋아 보였다. 길을 만들다가 큰 바위가 나타나면 부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둘러가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변 경관과의 관계가 자연스러웠다. 연수동은 ㄷ자형으로 되어 있는데 주출입구는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건물 옆에도 또 하나의 계단이 있었다. 폭이 꽤 넓은 계단인데 올라가면 ㄷ자형의 가운데 중정이 나타난다. 계단 아래에서는 길쭉한 중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올라갈수록 차츰차츰 중정의 조용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계단 아래와 위쪽이 전혀 다른 세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구분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시끄럽고 골치 아픈 세상과 깨달음이 있는 새로운 세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연수동 건물의 외관은 검소하고 단조로웠다. 검은색 판자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을 한 박공형 지붕이 있는 여러 개의 건물을 회랑으로 연결시켜 놓은 것 같았다. 교육실과 교육실을 연결한 복도가 전면 유리로 되어 있는 회랑인 셈이다. 양쪽의 경관이 모두 보인다. 연수를 하다보면 방을 옮겨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정신없이 뛰어 다니는 것보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다가 바깥풍경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것이 훨씬 좋다.

꽤 넓은 운동장을 지나면 숙박동과 식당이 있다. 운동장에는 잔디만 심어 놓았다. 그냥 전체대지의 가운데 부분을 비워 놓은 것이다. 비움을 위한 건물의 과감한 배치이다. 여러 개의 숙박동은 각각 높은 담장이 두면을 감싸고 있었다. 담장의 일부가 틔어져 있어서 대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담장 안쪽은 아담한 분위기의 마당이 연출되고 있었다. 마당이 건물과 담장에 의해 구획되는 공간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숙박동은 2층 건물이다. 방 안에서는 창문 밖으로 마당이 보인다. 창문이 벽 전체를 차지할 만큼 크다. 창문은 한지로 되어 있고 방바닥은 장판이다. 2층이 조금 튀어 나와 있어서 1층에서는 마치 처마가 있는 것 같았다. 마당과 건물이 만나는 ㄴ자 부분에는 나무덱크를 깔아 놓아서 마치 툇마루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요란스럽지 않은 옥상녹화는 이곳이 휴식공간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옥상 주변에는 빗물길을 만들어 놓았으며 빗물이 1층으로 내려가는 부분에는 조형미를 강조해 놓았는데 르 꼬르뷔제의 대표작인 롱샹교회당의 빗물받이를 떠올리게 하였다.

연수원 앞에는 자그마한 도랑이 있고 다리가 두개 있다. 하나는 차가 다닐 수 있는 다리이고 또 하나는 폭이 좁은 보행자 전용다리였다.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바닥에는 나무를 깔아 놓았고 한쪽 난간에는 녹슨 철판을 길게 이어 놓았다. 자칫 기대었다가는 옷이 벌겋게 된다. 성인의 키보다 높아서 도랑이 보이지 않았다. 붉은 녹은 시간과 철판이 서로 교류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마치 이 다리가 꽤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연수원쪽의 다리 입구에는 일부러 녹슨 철판을 설치해 놓았다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건너편 도로쪽의 다리 입구에는 가운데에 적당한 크기의 돌이 박혀 있었다. 다리를 건너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돌을 보고 멈칫할 수밖에 없는 크기였다. 이 돌이 있기 때문에 자전거, 오토바이가 다니기에는 불편할 것 같았다. 물론 사람이 다니기에도 불편하다. 모든 다리는 건너는 사람의 입장에서 편리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거치적거리는 것은 전혀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다리는 일부러 불편을 자초하고 있다. ‘즐거운 불편’이다.

이곳은 백범 김구 선생이 일제시대에 머물렀던 충남 공주의 마곡사 옆에 있는 ‘한국문화연수원’이다. 본래 이름은 전통불교문화센터였다. 요즘 유행하는 쉼과 휴를 위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작품이다.

지난 봄에 창원의 성산아트홀이 주최한 수요문화대학에서 처음 들은 후 10월경 경남 민언련이 개최한 인문학 강좌에서 또 강의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도 우연히 선생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연수원 건물에서 채움보다 비움이 더 중요하다는 건축가의 생각을 볼 수 있었던 것이 큰 기쁨이었다.
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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