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48>
오늘의 저편 <48>
  • 경남일보
  • 승인 2012.03.29 15: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셨네요. 민숙인 어떡하고 있어요?”

 학동에서 나팔댁으로 통하는 아낙이 부침개거리를 다듬다 말고 화성댁에게 다가가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평소에 오지랖이 넓다 못해 남 떡 먹는데 콩고물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더욱이 남 말할 건더기가 하나 잡히면 입에 옴벌레가 붙어버린 듯 근질근질해서 나발을 불고 다녀야만 직성이 풀렸다.

 “내가 오지 않을 이유라도 있나요?”

 국수국물을 만들기 위해 벌건 다시멸치를 큰 가마솥에 들이붓고 있던 화성댁은 목만 조금 들며 마지못해 억지로 웃었다. 

 ‘흥, 또 내 딸을 얼마나 씹어대려고?’ 

 속으론 코웃음을 쳤다.

 민숙이가 진석이하고 어쩌고저쩌고, 문둥이자식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배지도 않은 아일 가졌다고 거짓말까지 했을까? 나 같으면 새낄 낳고 살다가도 서방이 문둥병에걸리면 한 가랑이에 두 다리 끼고 달아날 궁리부터 하겠구먼. 형식이 총각은 이제라도 마음 잘 먹었어. 등등의 온갖 말을 이 아낙이 뿌리고 다닌다는 걸 화성댁은 잘 알고 있었다.

 생판 없는 말을 지어내는 건 아니었다. 심심파적으로 아니면 습관적으로 염려와 걱정 같은 것을 듬뿍듬뿍 섞어서 소문을 맛깔스럽게 조제하여 퍼뜨린다는 것이 걸려든 장본인의 기분을 더럽게 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많이 상하시죠? 지가 다 잠이 다 안 오는데…….”

 나팔댁은 화성댁 옆에 찰싹 달라붙은 아낙은 왼쪽 입 꼬리를 위로 좀 찍어 붙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맴이 상하는지 뭐하는지도 모르고 머리만 바닥에 닿으면 곯아떨어지기에 잠귀신이 붙은 줄 알았더니 이게 다 이녁 덕분이었구먼. 아무튼 내 걱정 통째로 가져가 주어 고맙소. 그렇더라도 잠을 너무 설치진 말아요. 남 걱정하다 내 건강 해친다고 누가 상이라도 주진 않을 테니까.”

 화성댁은 잘 타고 있는 아궁이의 불을 왁살스레 헤쳤다. 장작불은 탁탁 소리까지 내며 벌겋게 화를 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재주는 타고 났다니까.’ 

 입을 삐죽거렸다.

 “누가 상 받자고 이러겠어요? 한동네 사는 정이 뭔지 남 같지 않으니까 걱정도 하게 되는 거죠.”

 나팔댁은 입을 쑥 내밀었다.

 ‘그저 입을 나불나불 남의 가슴을 잘도 후벼 파는구나. 조 입을 그냥 바늘로 꼭꼭 꿰매 버릴까 보다.’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던 화성댁은 부지깽이를 아낙의 손에 쥐여 주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 몸을 옮겼다.

뭔가 탁탁 튀는 소리는 가마솥 안에서도 나고 있었는데 방금 몸을 일으킨 화성댁도 불 때는 일을 떠맡은 나팔댁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어디서 탄내가 나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