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군 궁류면에 ‘의령 4·26 추모공원’이 마침내 조성되고 거기에 ‘그 사건’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탑이 세워졌다. 그리고 사건 발생 반세기가 다 돼가는 시점에서 처음으로 관 주도 첫 위령제와 추모행사를 열었다. 지난 26일 궁류면 평촌마을에 자리잡은 추모공원 현장에서다. 그 일이 벌어진 지 42년만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도 하지만, 무슨 영문이었든 매우 늦은 위령(慰靈)이요, 유족에 대한 위로다.
위 지명이 상기시켜 주듯 ‘그 사건’은 흔히 이르는 ‘우 순경 총기난사 사건’이다. 봄꽃도 흐드러졌던 1982년 4월 26일 산촌의 밤. 인간의 탈을 쓴 미치광이 영혼의 순경 우범곤이 카빈소총으로 잠들었거나 상청(喪廳) 지키는 상주 등 일상의 시간을 보내던 주민 56명을 까닭없이 살해했던 일이다. 34명에게 총상을 입히기도 했다. 근무처인 의령경찰서 궁류지서의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과 실탄을 갖고 나와 운계 평촌 압곡 토곡 등 네 개 마을을 돌면서 난사하여 평온한 밤을 쑥대밭으로 만든 그 사건은 단시간 최다 살인으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끔찍한 만행이었다.
추모공원 조성과 위령탑 건립, 추모식과 위령제로 구천의 슬픈 넋을 달랬을까. 유족들의 아픈 영혼은 위로를 받았을까. 이 비극의 때늦은 관청 주도 추모식과 위령제를 보면서 우리는 이 정도 예의만이라도 왜 이토록 늦었던가에 잠시 생각이 맴돈다. 위령제를 전후하여 나온 여러 보도에 따르면 사건 이후 정권의 보도 통제로 추모 행사를 제대로 열지 못 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저지른 만행을 국민의 입과 귀와 뇌리에서 지우고 싶었던 것일 테다. 그러나 다 지우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관청이 예를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억울한 희생은 그 가해자가 사인이건 국가이건 피해자는 결코 잊지 않는 법이다. 사실과 진실은 그 어떤 큰 힘, 국가권력으로도 영원히 덮을 순 없다. 그것을 우리는 현대사 여러 모퉁이에서 생생히 보아오고 있다. 힘 가진 자가 감추고 싶은 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으로 그걸 덮으려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의령 추모행사는 그걸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위 지명이 상기시켜 주듯 ‘그 사건’은 흔히 이르는 ‘우 순경 총기난사 사건’이다. 봄꽃도 흐드러졌던 1982년 4월 26일 산촌의 밤. 인간의 탈을 쓴 미치광이 영혼의 순경 우범곤이 카빈소총으로 잠들었거나 상청(喪廳) 지키는 상주 등 일상의 시간을 보내던 주민 56명을 까닭없이 살해했던 일이다. 34명에게 총상을 입히기도 했다. 근무처인 의령경찰서 궁류지서의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과 실탄을 갖고 나와 운계 평촌 압곡 토곡 등 네 개 마을을 돌면서 난사하여 평온한 밤을 쑥대밭으로 만든 그 사건은 단시간 최다 살인으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끔찍한 만행이었다.
추모공원 조성과 위령탑 건립, 추모식과 위령제로 구천의 슬픈 넋을 달랬을까. 유족들의 아픈 영혼은 위로를 받았을까. 이 비극의 때늦은 관청 주도 추모식과 위령제를 보면서 우리는 이 정도 예의만이라도 왜 이토록 늦었던가에 잠시 생각이 맴돈다. 위령제를 전후하여 나온 여러 보도에 따르면 사건 이후 정권의 보도 통제로 추모 행사를 제대로 열지 못 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저지른 만행을 국민의 입과 귀와 뇌리에서 지우고 싶었던 것일 테다. 그러나 다 지우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관청이 예를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억울한 희생은 그 가해자가 사인이건 국가이건 피해자는 결코 잊지 않는 법이다. 사실과 진실은 그 어떤 큰 힘, 국가권력으로도 영원히 덮을 순 없다. 그것을 우리는 현대사 여러 모퉁이에서 생생히 보아오고 있다. 힘 가진 자가 감추고 싶은 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으로 그걸 덮으려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의령 추모행사는 그걸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