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에서 합천으로 옮겨 운영되던 경남예술창작센터 도대체 왜 없어졌어요?”

지난달 25일 김해 웰컴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에서 만난 김윤호 작가는 경남지역 레지던시 운영 현황 취재차 이곳을 찾았다는 소개에 대뜸 질문을 던졌다.

그는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입체 작가로, 올해 김해문화관광재단 문화도시센터가 운영하는 웰컴레지던시에 입주해 작업 중이다. 지난 2018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산청 생초면 폐교를 활용해 운영했던 경남예술창작센터에 입주했던 그는 이후 합천 진흥원 청사로 자리를 옮긴 레지던시가 돌연 운영을 중단하자 그 원인이 궁금했다고 했다.

김해에서 대안 공간 스페이스 사랑농장을 운영하는 김도영 대표의 반응은 한층 매서웠다.

2012년부터 2023년까지 12년간 운영된 도 단위 공공 레지던시가 아무런 공지 없이, 지역 미술계와 어떠한 교감도 없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사실에 분개했다.

김 대표는 “경남 신진 작가들이 바로 국내 주요 레지던시로 직행하기는 쉽지 않다”며 “지역에서 창작 활동을 하며 경쟁력을 쌓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기반이 레지던시인데, 경남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쏟아져 나오는 작가들이 발버둥 칠 공간을 없애버린 셈”이라고 했다.

지난 2023년 창원 갤러리 이목에서 열린 경남예술창작센터 16기 입주작가 결과전. 경남예술창작센터는 이 기수를 마지막으로 아무런 예고 없이 문을 닫았다. 백지영기자
지난 2023년 창원 갤러리 이목에서 열린 경남예술창작센터 16기 입주작가 결과전. 경남예술창작센터는 이 기수를 마지막으로 아무런 예고 없이 문을 닫았다. 백지영기자


그의 말처럼 경남에는 현재 도 단위로 운영되는 공공 레지던시가 없다.

도내 예술인들이 경남도에 도 단위 레지던시를 운영해달라고 요청해 지난 2012년 경남예술창작센터가 만들어졌지만 2023년 16기 입주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센터 운영 종료는 경남도의 판단이었다. 당시는 정권 차원에서 예산을 30%씩 삭감하겠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이었다.

2025웰컴레지던시 김윤호 작가 작업실. 백지영기자
2025웰컴레지던시 하정주 작가 작업실. 백지영기자


당시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은 공공 레지던시인 경남예술창작센터, 그리고 도내 민간 레지던시를 지원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을 모두 경남도 위·수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도비만으로 운영된 경남예술창작센터와 달리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은 국비를 일부 지원 받아왔는데, 당시 국비 지원을 받던 문화예술 지원·교육 사업들이 지방으로 일괄 이양되면서 경남도가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 예산을 전부 부담해야 했다.

예산 조정에 나선 경남도는 공공 레지던시를 직접 운영하는 경남예술창작센터와 민간 레지던시를 지원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의 성격이 중복된다며 경남예술창작센터 운영을 중단하고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집중하기로 판단했다. 그렇게 경남도 단위 공공 레지던시를 만들어 달라는 도내 예술인 요청으로 문을 열었던 경남예술창작센터는 예산 전액 삭감과 함께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았다.

김도영 스페이스 사랑농장 대표는 “10년 이상 잘 운영하며 역사를 쌓아온 도 단위 공공 레지던시 먼저 중심을 잡고 민간을 지원하는 것 아닌가. 민간 레지던시 한 곳 지원할 예산이면 충분히 운영도 가능하다”며 “다른 지역이었으면 이미 크게 공론화됐을 것”이라고 했다.

숙박이 제외돼 레지던시라 부르기는 어폐가 있지만, 경남문화예술회관이 경남 서부권 청년 작가들이 부담 없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2020년 문을 연 예술 창작 공간 ‘스튜디오 G’(옛 ‘아트스페이스 남강’)도 5년 차인 2024년 소리 소문 없이 운영을 종료했다. 컨테이너 2개 동으로 경남문화예술회관 주차장 부지에서 운영을 시작한 ‘스튜디오 G’는 경관 훼손 민원 등으로 이를 경상국립대 부지로 옮겨 운영에 나섰지만, 이 대학(원) 소속이 아니라면 지원을 꺼리게 되는 문제와 지원율 저조로 운영 중단을 결정했다. 해당 컨테이너는 현재 경남문화예술회관 조망을 해치지 않는 뒤편 유휴 공간으로 옮겨져, 경남도립극단 소품실과 무대기술팀 다용도실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도 단위 공공 레지던시가 사라진 경남은 현재 기초지역 단위 공공 레지던시와 민간 레지던시만 운영되고 있다.

 
김해 웰컴레지던시 거주 공간(왼쪽)과 사무 공간. 백지영기자


공공 레지던시 중에서는 김해 웰컴레지던시가 돋보인다. 미술 전공자를 채용해 운영 구조를 보강하고, 작가를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시켜 행정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는 등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민간은 대부분 공공 예산에 의지해 매해 그 운영 여부를 결정짓는다. 올해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7곳이 신청해 6곳이 선정됐다. 이 사업으로 수로요 도예레지던시, 마산현대미술관(경남문화예술연구원), D·D ART 레지던시, 에스앤케이컴퍼니 조형연구소, 공간 쌀 레지던스 등 시각 예술 분야 5곳과 문학 분야인 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 ‘신진 희곡작가 발굴 프로그램’ 등이 운영됐다.

 
‘2025 아트커넥션페스타’ 당시 진행된 아트 모자이크 전시. 경남문화예술진흥원 ‘2025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돼 올 한 해 레지던시를 운영한 민간 레지던시들이 합동 전시에 나섰다. 왼쪽부터 마산현대미술관(경남문화예술연구원), D.D ART 레지던시, 에스앤켕컴퍼니 조형연구소 입주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백지영기자
‘2025 아트커넥션페스타’에서 경남문화예술진흥원 ‘2025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돼 올 한 해 운영된 민간 레지던시 6곳의 우수 입주 작가들이 김종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장에게 표창장을 받은 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백지영기자


레지던시의 지속 가능성은 여전히 가장 큰 과제다. 운영 기관의 의지, 안정적인 재정 구조, 그리고 탄탄한 네트워크라는 세 가지 요소가 균형 있게 결합될 때 비로소 레지던시는 장기적인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현재 경남을 비롯해 한국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장기성이다. 경남에서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받는 웰컴레지던시조차 시의원들이 ‘그래서 어떤 성과를 냈냐’고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해오며 예산 삭감에 나서기 일쑤다.

송성진 전 웰컴레지던시 PM은 “예술은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오는 게 아니고 지속적으로 연결돼 꾸준한 시간과 공을 많이 들여야 차츰차츰 자리잡는데, 생긴 지 5년 됐으니 성과 보여줘야 되는 거 아니냐 하면 뭔가를 제시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작품 활동과 함께 주 3일은 웰컴레지던시로 출근해 예술과 행정을 이어왔던 그는 작가들이 지역에 영감을 받은 작품을 창작하고, 레지던시에서 작가들이 교류하며 시야를 넓히는 가치 대신 방문객 수 등 눈에 보이는 성과만 요구해오는 행정에 큰 회의감을 느꼈다.

이 같은 행정의 시각은 단순히 예산을 넘어 운영 철학과 생태계 구축 방식의 문제로 직결된다. 장기 운영을 전제로 한 기획이 구조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정헌기 광주 호랑가시나무창작소 대표는 행정이 예술은 삶을 지속하고 그 사회, 지역이 얼마나 발전했나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 대표는 “한때 빈집 문제가 대두되던 시절 작가들을 불러 공간을 살리라는 요구가 쇄도했다”며 “그 유행이 지나간 시점 이를 다시 예술로 채워 넣는 게 행정의 테크닉”이라고 짚었다.

그는 “예술은 지역민을 위한 복지라는 생각으로 지속적인 계획하에 지원해야 한다”며 “작업실을 지자체가 구입해 창작 공간으로 내어주고, 그렇게 만들어낸 작품을 지역민이 향유하도록 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우리도 모르게 정말 대단한 사람이 나올수도 있다”고 했다.

허장수 부산문화재단 예술창작본부 창작지원 2팀장은 경남도 단기 성과에만 매몰되고 지역 특성에 맞는 레지던시 운영에 나선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허 팀장은 “민간에만 맡기기보다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같은 도 단위 기관에서 주도해 지리산, 대기업 탄생지 등 지역별 컨셉이 명확한 레지던시가 운영되도록 방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레지던시 결과 탄생한 작품들을 어떻게 유통, 번역해 확산해 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이들은 “단기간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시간이 쌓일수록 동네·지역 생태계의 질이 올라간다”며 “속도보다 지속성, 눈에 보이는 숫자보다 지역·예술가 중심의 변화와 신뢰를 행정이 믿고 지원할 수 있어야 경남형 모델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창작은 땅에 씨를 뿌리듯 단숨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예술’이라는 작가들의 말처럼, 오늘만이 아니라 긴 호흡의 묵묵한 지원이 경남 레지던시의 내일을 꽃 피운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 수로요도예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 백지영기자
2025 수로요도예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 백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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