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조상의 묘를 팔아먹은 자
icon 이창덕
icon 2016-05-29 14:13:48  |  icon 조회: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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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이는 자기 할아버지의 묘까지 팔아먹었다면서?”
“묘까지 팔아먹었을 리야 있겠나? 묘가 있는 산을 팔아먹었겠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와 같은 사례가 한둘 뿐은 아니어서 어떤 가문의 불효막심한 자손을 맹렬히 성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언젠가 한 여고생이 친구에게 한 말,
“졸업하고 나서 취직을 못 하면 사람들이 욕해.”
‘한국인은 배우자가 죽으면 그 자체보다도 남한테 어떤 말을 듣게 되는 것이 더 슬프다.’라는 속담과 관련이 있을 사례는 흔한 것이었다.
한 자리에 모여 있던, 동네 아줌마들에게 1,2,3...의 번호를 붙여서 말하자면 1번이 잠시 자리를 비울 때(화장실에 가는 경우도 있었을 것임) 2번과 3번(그 이상의 아줌마들이 있는 경우에도 상황의 성격은 같은 것이었음)이 1번에 대한 험담을 했다.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기타 등등 인간성에 등급이 있다면 자기보다 낮은 등급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1번이 돌아오고 2번이 자리를 비우면 1번과 3번이 2번에 대한 험담을 했다. 3번은 조금 전에 2번과 함께 1번에 대한 험담을 하면서 맞장구가 척척 들어맞았는데 이제는 2번을 주제로 한 맞장구를 1번과 함께 치다니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라는 말이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3번은 자리를 비우면 자신이 1번과 2번의 화제가 될 것을 상상하지 못 했다면 자신에게는 약점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었겠지만 남을 비평하는 기준은 중구난방일 테니까 그렇고 그런 상황이 계속되었다.
미래를 내다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구설수(口舌數)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같은 상황에서라도 운이 좋으면 남의 입방아 대상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조상의 묘를 남의 땅에 버렸다’라는 말보다는 ‘팔아먹었다’라는 말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서운한 것이다. 남의 산을 매입한 사람은 묘까지 사지는 않았다. 덤으로 끼워준다면 즉시 없애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니까 묘의 연고자는 팔아먹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어서 팔 수가 없는 것이지만 말에는 소위 ‘도매 값’이라는 표현도 있듯이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니까 그런 구설수가 성립되기도 한다.
이전의 그 주인은 묘에 대한 소유권을 법적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묘가 남의 땅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해도 후손들은 이전과 변함없이 성묘를 자주 하며 조상을 모실 수도 있겠지만 그 땅을 팔았다는 것은 그곳에 자주 올 입장이 안 된다는 것이고 세월이 가면 그 후손들도 세상을 떠나게 될 테니 조상의 묘를 영원히 지킬 수 없는 불효를 남보다 일찍 실현한 셈이다.
그런데 이제는 세태가 좀 바뀌어서 그런 불효자손에 대한 재평가가 가능할 희망이 보일 것도 같다. 자기가 죽거든 묘를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는 사람들이 늘어간다고 한다. 후세를 위해서 기존의 묘를 없애버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조상의 묘부터 없애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조상의 묘를 남의 땅에 버린 것은 조상의 유골이 차지하고 있던 땅을 그 이전의 자연 상태로 환원될 수 있게 한 것이다. 나날이 망가지는 환경에 대한 문제의 측면에서 보면 중대한 의미가 된다. 그 가문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국민적인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 땅이 개발되어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서게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남의 험담을 즐기려면 남을 등쳐먹는 자들에 대해서는 목청을 한껏 높이더라도 조상의 묘가 있는 산을 팔아먹은 자들에 대해서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2016-05-29 14: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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