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지금부터 20년 전에는...
icon 이창덕
icon 2016-07-31 16:59:42  |  icon 조회: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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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가 없었고 공중전화를 이용했기 때문에 있었던 일이다. 울산에 거주하던 나는, 서울 친구인 '정’이 속초에 갈 예정이라는 전화를 받고 나도 거기에 갈 일이 있으니 같은 날짜에 가기로 했다.
나는 속초에서 한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니 그곳에 두툼한 지갑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주인이 그것을 찾으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후에 ‘정’이 마중을 나왔는데 지갑의 주인은 오지 않아서 나는 일단 그것을 가지고 나왔다. 그 주인은 그것을 잃게 되면 공중전화를 자기 다음에 사용한 사람의 소행이라고 생각할 것이 뻔할 것 같았다.
나는 '정’을 따라서 그의 친구이며 나와는 초면인 ‘박’의 집으로 갔다. 나는 '정’과 그곳에서 길게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그곳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어서 ‘박’에게 가까운 파출소의 위치를 물어보고 그 지갑 이야기를 했다. ‘박’은 그 지갑을 보자고 하여 건네주었더니 그는 그것을 열어보았다. 나는 누군가의 입회하에 열어보려고 생각했던 대로 그 내용물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돈 15만원과 신용카드, 어떤 업소의 회원증 등이 있었는데 그 명의는 ‘김명화’였다. 신분증은 없었고 전화번호가 있어서 ‘박’은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안 되었다. ‘박’은 자기가 나중에 전화하여 주인을 찾아주겠다며 그 주인이 나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할 수 있게 나의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기에 그렇게 하고 나는 그곳을 떠났다.
나는 공중전화를 이용할 때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가 필요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내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는 것이 공통된 반응이었다. 나는 ‘정’을 믿으니까 ‘박’도 믿었던 것이 어리석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박’의 집에 있었을 때 다른 사람들도 몇 명 거기에 있었다. 심각한 사실도 농담 비슷하게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그 지갑 주인이 되어 주지. 울산에 고맙다는 전화만 하면 될 테니...”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 지갑에 있었던 이름은 기억하기 쉬웠지만 전화번호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내가 그것을 적어두려고 했다면 ‘박’을 못 믿겠다는 의미가 되니까 그렇게 안 했었다. 나는 울산의 집에 전화를 하여 속초에서 전화가 오면 그 전화번호를 물어서 적어두라고 당부했다. 전화기에 발신자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지 않으니 그런 당부가 필요했다.
이틀 후에 울산의 집에 오니 그런 전화가 왔었다며 전화번호도 기록되어 있었는데 지갑에 있었던 번호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연결이 안 되어 의심이 더해졌다. 아침 일찍 혹은 밤늦은 시간에도 계속 전화를 걸었더니 드디어 연결이 되었다. 여자 목소리였는데 매우 무뚝뚝했다. 나는 그 지갑이 제대로 전달되었다는 확인서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친구 관계라고 하던데 친구를 못 믿어서 그러느냐, 그렇게 속아서만 살았느냐고 반박했다. 나는 그 지갑의 주인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며,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이 확인하러 갈 테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말도 했다. “아이구, 그 돈 돌려주고 나서 아까웠던 모양이지? 도로 줄까요? 그까짓 것 몇 푼 되지도 않는데...”라는 반박은 진짜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에게 전화하여 ‘박’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며 이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더니 “신경 쓰지 마. 그 친구 믿어도 돼. 그 친구는 5층짜리 건물도 가지고 있어.”라고 대꾸했다.
나는 '정’에게 배신자가 되는 셈이지만 속초경찰서에 편지를 보냈다. 그 전화번호를 통해서 경찰이 그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 어떤 업소의 회원인 김명화라는 사람이 그 집에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요청했다. 이틀 뒤에 속초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보통편지가 전달되자면 이틀 걸리니까 편지를 받고 곧 전화를 한 셈이었다. 지갑이 주인에게 전달된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전화 연결이 잘 안 될 수도 있고 수신자의 거부 반응 같은 것이 있을 것도 같은데 그렇게 신속히 처리가 되었다는 것이 좀 신기했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근래에 ‘정’을 비롯한 옛 친구들과 속초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정’이 그 지갑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주인을 찾아주지 않은 것 같애.”라는 말도 했다. 나는 “경찰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 같애.”라고 응수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안 했다. 내가 경찰에 편지를 보냈던 사실을 ‘정’에게 말하기는 곤란한 것이었다. ‘정’의 짐작이 맞는 경우, 내가 그 지갑을 공중전화박스에 그대로 두고 왔다면 그 주인이 그것을 분실할 가능성이 전연 없었을까? 경찰이 이것을 원칙대로 다루었다면 혹시 잘못될 뻔했던 것도 시정될 수 있었을 것인데, 이럴 경우 여기에 관련된 친구들 관계가 난처해질 수도 있을 테니 그 정도로 얼버무린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일까?
2016-07-31 16:5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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