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16>
오늘의 저편 <116>
  • 경남일보
  • 승인 2012.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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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석은 조퇴를 하고 오겠다고 하며 민숙에게 집에서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여자 둘이 우범자들이 많은 산에 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라고 단단히 겁을 주면서 그랬다. 그러나 노파와 민숙은 이렇게 기어이 ㅇㅇ암자까지 오고 말았다.

“필중아, 필중이 안에 있냐?”

노파는 방문을 열어젖히려다 목소리를 먼저 냈다.

“아마 학생이 낮잠을 자는가 봐요.”

방안에선 아무런 기척도 나오지 않자 노파와 방문에다 번갈아 눈길을 그어대는 민숙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이놈이 다른 데로 달아났음 어떡허쥬?”

문고리를 잡는 노파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사실 민숙이도 문을 열어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숲에서 어머니를 지켜보고 있던 필중이 아버지는 옷의 앞자락을 끌어당겨 눈시울을 찍어대고 있었다. 그는 어제 서울을 다녀온 후 줄곧 ㅇㅇ암자 주변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어머니, 어서 빨리 방문을 열어보세요.’

그는 애틋한 눈빛으로 노파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용기를 낸 민숙이가 방문을 열었다. 잠에 빠져 있는 학생을 발견하곤 노파의 손을 덥석 잡았다.

밤새 거처를 옮길까 말까 고민하던 필중은 새벽녘에야 잠이 든 것이었다.

노파가 눈을 번쩍 뜨며 방안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손자의 얼굴을 핥아대며 숨을 죽였다. 여유 있는 웃음을 좀 흘리며 안으로 들어간 민숙이도 숨을 죽였다.

민숙에게 얼굴을 돌린 노파는 손자가 잠을 깰 때까지 기다리자고 소곤소곤 말했다. 민숙은 그냥 목을 끄덕였다.

‘이제 난 내 갈 길로 가도 되겠지?’

필중이 아버지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저쪽으로 돌렸다. 난데없이 나타난 어치가 목청을 뽑아 꺅꺅거리기 시작했다. 때깔이 너무 고운 그 새를 부러운 눈길로 올려다보던 그는 목을 땅으로 내려 쓸쓸히 멀어져 갔다.

숲 사이로 낯선 사람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두어 명쯤 되어 보이는 그들은 필중이 아버지를 숨어서 지켜보다간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필중이가 몸을 한번 뒤척이는 바람에 노파는 흠칫 놀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손자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보곤 수건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내 포기하고는 손바닥으로 손자의 이마를 조심스레 닦았다.

“으윽! 누, 누구……? 할머니!”

인기척에 잠을 깨고 만 필중은 노파와 민숙을 번갈아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어 수척해진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아픈지 미안한 얼굴로 목을 아래로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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