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17>
오늘의 저편 <117>
  • 경남일보
  • 승인 2012.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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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내 새끼! 쯧쯧, 그래 얼굴이 이게 뭐여?”

 또한 야윈 손자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노파는 기어이 흑흑 느끼어 울기 시작했다.

 덩달아 맑은 눈물을 보이던 필중은 할머니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앞장서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어치가 뭔가를 쪼아대듯 또 자지러지게 꺅꺅 짖어댔다.

 “저한테 업히세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산을 내려오던 필중은 별안간 허리를 굽히며 노파 앞에 등을바짝 들이댔다. 내려디딜 때마다 할머니의 다리에서 경련이 일어나곤 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아니다. 이 할미 더 늙으면 그때 업어다오. 아직은 이 다리 두 짝 다 쓸 만하다.”

 노파는 힘자랑이라도 하듯 손자를 제치고 앞장섰다.

 “손자 참 잘 키우셨습니다. 그냥 업히시지 않으시구요?”

 정말 대견하기만 한 필중을 보며 민숙은 콧마루가 시큰해 옴을 느꼈다.

 “별 말씀을요? 워낙에 천성이 착해서 그런 것인데유.”

 불현듯 노파는 쓸쓸한 표정으로 남몰래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쳐온 것이었다. 세상이 둘도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몹쓸 병에 걸려 소록도로 끌려가면서도 이 어미 마음 다칠까봐 신세한탄 한번 하는 법이 없었다.

 ‘이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아들의 모습을 그리고 또 그리며 노파는 울음을 목구멍으로 자꾸자꾸 삼켰다.

 노파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고 있던 민숙이가 귀를 바짝 세우며 목을 왼쪽 숲으로 돌렸다. 방금 전에도 그쪽을 향하여 겁에 질린 얼굴을 돌리며 양미간을 찌푸렸다.

 “저기서 사람 소리가 나는 것 같지유?”

 노파가 민숙의 귀 가까이에 입을 갖다 대며 소곤거렸다.

 질린 얼굴로 목을 끄덕이던 민숙은 무심결에 진저리를 쳤다. 산이란 산은 죄다  우범지역이 되어 버렸다고 하던 남편의 말이 속귀에서 울리고 있었다.

 “좀 숨어 있다가 내려가는 것이 낫겠어요.”

 모깃소리로 속삭이는 민숙의 얼굴빛이 백지장처럼 하얬다. 

 노파의 손을 잡고 있던 필중은 다른 한손으로 민숙의 손을 꼭 잡아주며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파와 민숙은 벌써 녀석의 손을 우거진 찔레나무 숲 뒤로 잡아당겼다.

 “괜찮다니까요.”

 필중은 여유 있는 웃음까지 보이며 가던 길로 두 여자를 이끌었다.

 “학생, 할머니 말씀 들어요.”

 민숙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필중은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환자의 아들이라고 했더니 귀신도 병이 옮을까 봐서 겁이 났던지 거들떠보지도 않더라고 그렇게.

 노파와 민숙은 더는 아무 말도 못하고 녀석을 보며 놀란 동공만 굴리었다.

 요만치 앞에서 까치걸음을 하던 어치가 푸드덕 날아오르며 세 사람 앞에 길을 내주었다. 푸른빛 날갯짓 사이로 뽀얀 뭉게구름이 내려왔다.

 바로 이때 필중이 아버지는 문둥병자들과 맞부딪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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