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편 <118>
오늘의 저편 <118>
  • 경남일보
  • 승인 2012.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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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늘의 저편

사람이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굶주림 때문에 발생하는 범죄는 일어나지 않을까. 소록도를 탈출하여 유리걸식하던 나환자들은 약탈을 일삼고 있었다. 그들에게 보리개떡이라도 나누어주었다면 남의 먹을거리에 눈독을 들이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한센병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억압과 강제노역에서 해방된 기념행사라도 벌이듯 강도짓을 서슴지 않았다.

“많진 않지만 우리 이거 나누어 먹읍시다.”

나환자들과 맞닥뜨린 필중이 아버지는 어머니가 싸준 눈물덩이 주먹밥을 있는 대로 다 꺼내놓았다. 문둥병자들은 민숙이와 노파와 필중이 이렇게 세 사람의 뒤를 밟고 있던 중이었다.

필중이 할머니는 아들이 선걸음에 또 사라지려고 하자 있던 밥 없던 밥 다 챙겨서 급한 대로 간장에 비벼 뭉쳐준 것이었다.

“이러코롬 많은 거 사이좋게 나눠 묵고 워디 간에 기별이라도 가겠소?”

얼굴이 멍울 밭처럼 되어버린 나환자가 비아냥거리듯 말하곤 민숙이 일행이 내려간 그 길로 눈길을 그었다.

“맞구만이라. 비켜주소. 요것 훔치느라 겁나게 애썼을 것인디 형씨 혼자 만나게 드시씨요에.”

손에 양말을 끼고 있던 나환자가 주먹밥을 도로 필중이 아버지 앞으로 밀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민숙이 일행을 따라잡을 태세였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들만은 그냥 보내주십시오.”

필중이 아버지는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괴나리봇짐 속에 숨겨둔 미숫가루까지 내놓았다.

‘배고플 때 한 숟갈씩만 먹어도 요기가 될 것이다.’

속귀에서 되살아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되새김질하며 필중이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햐! 요것은 또 워디서 집어왔당가요?”

양말 나환자는 신통하다는 눈으로 미숫가루 주머니를 낚아채듯 빼앗았다.

“저 사람들과 뭔 관계가 있는 것이다요?”

멍울 나환자가 필중이 아버지와 민숙이 일행의 그림자에게로 번갈아 눈길을 그어댔다. 미숫가루를 보는 그의 눈빛이 부러움이랄까 그런 것이 담뿍 담긴 채 복잡하게 흔들렸다.

“딱 한번만이라도 아들 노릇 아비 노릇 하고 싶습니다.”

필중이 아버지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시기 그란께 그 할무니가 형씨 어무니요?”

말이 없어보이던 나환자가 점괘를 내놓으며 끼어들었다.

필중이 아버지는 그를 향하여 목을 끄덕였다.

“워매! 그란께 말일씨 거시기는 거시기, 거시기는 거시기란 말이어라?”

양말 나환자가 주제 모를 감동의 눈빛을 튀겨대며 필중이 아버지의 눈에 눈을 딱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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