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시간
멈춰버린 시간
  • 경남일보
  • 승인 2012.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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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륜현·(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시간이 멈춘다.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흘러가는 시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시간이 멈춘다는 건 어떤 걸까. 멈춰버린 시계를 보면서 생각했다. 시계는 멈췄지만 시간은 흐르고 있다고. 그렇다면 시간이 멈춰버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인간뿐이지 않을까. 그래서 오로지 사람의 기준으로만 시간이 멈춘다는 것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어떻게 하더라도 나의 시간은 멈춰지지 않는다. 나의 시간을 멈출 수 없다면, 남의 시간은 멈출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던 어느 날 누군가가 숨을 거뒀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고 그저 사람의 죽음이라 생각하니 씁쓸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죽음으로 내가 사랑하던, 내가 아끼던 누군가의 죽음 또한 생각났다. 그 순간 비로소 멈추었다. 나와 그 사람의 시간이 그이가 죽던 그 순간부터 멈춘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시간이 멈춘 것일까, 나의 시간이 멈춘 것일까. 그의 죽음으로 그와 함께할 수 있는 나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놓였다. 그가 삶을 살 수 없게 됨으로써 그의 시간은 다신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시간이 멈추었다고 하기엔 죽은 이에게 시간이란 개념을 적용시키는 것이 옳은가 싶다. 그렇다면 결국 그의 별세로 시간이 멈춘 것은 그의 시간을 더 이상은 할애할 수 없게 된 내가 아닐까.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누구의 시간이 멈춘 것인지가 달라진다. 하나, 둘 중 누군가의 혹은 둘 다의 시간은 결국 멈추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시간이 멈출 경우 모든 것이 멈춰 버린다. 사람도, 동물도 마치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멈춘 그 시간 속에는 정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 묶여버린 시간의 흐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걸까. 멈춰버린 시간의 세계에 그는 더 이상 나와 새로운 무언가를 함께할 수 없다.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고, 잠을 자는 그 어떤 것도 함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당연한 일상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 누군가의 죽음이라면, 살아서 흐르는 나의 시간을 그를 위해 쓸 수는 없을까.

어디선가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거라고. 누군가의 기억 끝자락에라도 남아 있다면, 그건 사라진 게 아니라고. 그렇다면 그의 멈춰버린 시간 속에 나는 그를 살게 해주고 싶다. 나의 기억 속에서 살아 함께하고 싶다. 비록 그는 이제 없지만 그와 함께하던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으니 그렇게 숨 쉬듯 놓아두고 싶다. 그렇게 묶여버린 시간의 흐름에서 그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그의 시간은 계속 흐르는 것이 아닐까. 평범했던 과거의 한 장면이 추억하면 할수록 아련해지듯이 점점 더 아름답게 흘러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하지만 때론 멈추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멈추는 시간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에 젖으며 사는 것이 아닐까. 멈추는 시간은 슬프지만 그 멈춘 시간 속에서 잊힌 무언가를 발견해낼 수 있다면, 그 향수만큼 아련한 것이 과연 있을까. 그것이 좀 더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시간이 멈춰버리기 전에 예쁜 색깔을 칠하는 오늘이 되길 바란다. 또한 언젠가의 누군가에게 나의 시간이 멈춰지는 때가 온다면, 그이도 나를 추억하며 묶여진 시간 속에서 나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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