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행복 vs 빠른 수단
느린 행복 vs 빠른 수단
  • 경남일보
  • 승인 2012.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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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핵발전소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에너지이며 그만큼 첨단의 연구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화석연료가 감히 따라 올 수 없을 만큼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그 효율성 또한 지상의 인간생활 전 영역에 걸쳐 있다. 더 많은 에너지를 빠른 시간 내에 얻고자 했던 결과물이다.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현 군사기술 중 첨단의 것들만 모아 만들어낸 것이다. 승무원 6000명이 3개월 먹을 식량을 탑재할 수 있으며 중소국가의 항공력을 보유한 해상의 첨단물이다. 우주공학은 가히 모든 공학의 첨단물이다. 천상으로 날아가는 더 나은 기술, 더 긴 거리, 더 빠른 속도를 위해 인류의 모든 지식을 쏟아부은 것이다. 이제는 화성에 사람이 갈 수 있을 정도다. 육해공의 첨단물이 이렇다면 4차원 정보지식의 산물인 컴퓨터는 20세기말 인류가 만들어 놓은 정보기술의 첨단물이다. 이에 대해 재론의 여지도 없으며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가? 핵발전소 봉합실 어디에 나사가 풀리면 수십명의 직원들이 스패너를 하나씩 들고 줄을 선 다음 한 명씩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풀린 나사를 눈꼽만큼씩 조이고 다시 뛰어 도망쳐 나온다는 것을. 방사능이 누출되려는 순간 인간은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항공모함의 불시착으로 인해 죽은 전투기 조종사가 전시 때 죽은 이들보다 더 많다는 사실도 아는가. 전투기가 착륙할 때 수신호로 거리를 조정하며 갑판에 끈을 매달아 착륙하는 비행기 다리를 걸거나 거울의 반사각을 이용한다는 사실도 아는가. 항공모함의 이 핵심업무를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또 우주선 내부에서는 연필로 우주를 기록하며 가장 일반적인 사진기로 우주의 모양을 찍는다는 것을. 컴퓨터가 먹통이 되면 잠시 껐다가 다시 켜면 된다. 아주 원시적인 부분이 잘못되어 이 정보의 첨단물이 작동을 멈춘다는 것을 컴퓨터 기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물론 다른 방식의 해결법이 이미 제시되었을 수도 있고, 보다 첨단적인 해결방법을 지금 구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삶이 지나치게 첨단적일 때는 원시적인 방법이 가장 적절한 해결사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느끼면서도 첨단의 몽상에 빠져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수단에 빠져서 목적을 잃어 버렸을 때 우리는 삶의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실은 아이러니란 용어의 정의가 바로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려 수천년의 노력을 경주했지만 예술 속에서나 그 가능성을 실험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면 초능력을 지닐 수 없다. 오로지 도구 즉 수단을 통해야만 한다. 즉, 수단은 인간 능력의 연장물이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연장물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유일한 목적인 행복을 목적으로 한 수단이다. 잘살고자 하는 행복을 위해 인간은 수단을 첨단으로 만들기를 고대했고 그것을 빠르게 실현시켜 지금에 이른 것이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로 대표되는 근대 혹은 20세기 속도의 철학은 삶의 위계질서를 뒤집었다. 목적을 잃어버리고 수단만 강요됐고, 수단이 마치 목적인 양 취급됐다. 돈, 아파트, 지위와 같은 수단이 목적이 되어 인간의 행복을 짓눌렀다. 맑은 공기, 비옥한 땅, 청정한 물과 함께해야 할 느린 육체가 도시의 속도에 의해 망가졌다. 짓고 부수고 다시 짓기 쉽도록 모듈화된 아파트는 인간이 육체에 맞도록 느리게 살아갈 마음의 여유를 빼앗았다.

근대사회와 20세기는 수단을 빠르게 변화시켜 많은 이들에게 물질적인 혜택을 나눠주려 했다. 몽매했던 이들에게 더 나은 삶의 수단을 누리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수단이 목적으로 변하는 순간, 느리며 순차적인 계절과 변화의 모습을 가졌던 자연을 파괴했으며 연이어 인간마저도 유린해 왔다. 21세기는 급하게 변하지 않는 느린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급히 변해 버린 수단을 맞춰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부여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행복은 지속적으로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단이 변해가는 속도를 늦출 것인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수단의 급한 프로그램 속에서 운영할 것인가. 먼저 이 골치 아픈 문제부터 따지고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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